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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_ 철의 나라 가야연맹

 

 

가야 연맹의 탄생

 

 

 

한반도에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세워질 무렵 남동부 지방에 가야 연맹이 생겨났다.

 

 

 

기원전 108, 한나라 공격으로 고조선이 망하고, 고조선 사람들이 남쪽으로 피해 오면서 변한 지역으로 많이 몰려왔

 

.

 

 

 

고조선 사람들은 변한 지역 사람들에게 쇠 만드는 기술을 전해주어 변한 지역은 철 기술이 눈에 띄게 발달하게 되었다.

 

 

 

금관가야가 변한의 철 무역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중국과 왜를 연결하는 해상무역을 이끌었다. 그러면서 연맹전체가 금

 

관가야의 원래 이름(구야국)을 따라 가야로 불리게 되었다.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인 낙동강을 가지고 있는 금관가야를 반드시 거쳐야 외국과의 교류가 가능했으므

 

, 금관가야의 지위가 점차 높아져갔고, 다른 가야 지역보다 먼저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금관가야를 비롯한 가야 연맹 중에는 강력한 왕권이 없었기 때문에 각 나라 왕이 자기 나라를 다스리는 연맹 형태의 국

 

가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금관 가야의 발전과 쇠퇴

 

 

 

 

금관가야는 무역 중개로, 철의 수출로 부귀를 누렸다.

 

 

 

300년대에 들어와 금관가야가 무역을 독차지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8 나라가 금관가야에 반기를 들었다.

 

 

 

때마침 고구려 미천왕이 한반도에서 낙랑군과 대방군등 중국 세력을 몰아내자, 무역으로 이득을 얻었던 금관가야는 큰

 

타격을 입었다.

 

 

 

금관가야에 불만을 품었던 8 나라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금관가야를 공격하였으나, 금관가야가 신라에 도움을 청하

 

여 반란을 진압하였다.

 

 

   

이 사건으로 금관가야의 지위가 추락하였고, 신라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이 후 마한의 여러 나라를 통합한 백제가 들어서고, 중국과 왜의 무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역 중심지가 되었다. 가야의

 

여러 나라가 백제 편으로 넘어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교역하고는 했는데, 금관가야도 하는 수 없이 대세를 따를 수 밖에 없

 

었다. 이러한 이유로 백제와 친한 왜가 신라를 공격하도록 길을 터주었고, 신라는 고구려에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원하러 와 신라 땅에서 왜군을 몰아내고 달아나는 왜군을 따라 금관가야 지역까지 밀어

 

닥치다보니 금관가야의 땅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고구려의 공격으로 가야 연맹은 깨지고 말았다.

 

 

 

다시 일어서는 가야

 

 

 

고구려의 공격 때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지역인 고령일대에 자리 잡았던 대가야는 농사를 지으며 서서히 나라의 힘을

 

키워갔다.

 

 

 

철제 기술자들까지 대가야로 모여들자 비옥한 땅, 철기 기술까지 얻게 되어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고 주변나라를 끌어

 

들여 가야 연맹을 다시 만들었다.

 

 

 

500년 무렵 안정을 찾은 백제와 신라가 가야땅을 넘보기 시작하였다.

 

 

 

백제 무령왕이 가야를 공격하여 땅을 빼앗아가자 대가야의 이뇌왕은 신라의 법흥왕과 결혼동맹을 맺어 백제를 견제하고

 

자 했다.

 

 

 

하지만 신라에는 다른 속셈이 있었으므로 529년 가야지역을 공격하였고 가야연맹은 신라, 백제의 공격을 받아 쇠퇴해

 

갔다.

 

 

 

532년 신라의 공격으로 금관가야가 멸망하였다.

 

 

 

554년 백제와 신라간의 싸움에서, 남은 가야 연맹은 백제의 편에서 싸움에 가세하였는데, 신라가 이김으로써 백제뿐

 

아니라 가야연맹도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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