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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듀오링고로 일본어 조금, 중국어 조금 공부한다고 했었다가

얼마 못 가서 시들시들해져서 잊고 지냈어요.

그러다 그냥 뭔 바람인지, 다시 듀오링고를 써보고 싶은거에요. 한국식 영어로 영어를 배웠기에 스피킹보다는 문법, 리딩에 강한 점을 생각해서 중국어만은 이전에 영어를 배웠던 학습 방식에서 탈피해서 좀 더 재미있게 배워보자!고 마음 먹었죠.

중드 같은 드라마, 유튜브로 공부하기 이런 것들은 저랑 맞지 않아서 패스.

왜냐면 저는 영상을 보면 눈과 몸 전체 피로도가 너무 높아져서 컨디션이 나빠져서 오래 지속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슬프지만 사람들이 강추하는 공부법은 쓸 수가 없다능..

혹시 듀오링고같은 어플로만으로도 중급 이상이 될까? 한번 재미삼아 도전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하루 5분정도만 투자해도 괜찮겠다 싶었거든요.

이건 며칠전에 찍은 거고 지금은 점수가 더 높아요!

사파이어 단계 1등이랍니다~! 캬캬캬!!

이게 은근 등수 내려가니까 기분이 나쁘더라구요?? 그래서 5분 학습할 거 10분하고 막 그랬더니 1등을 한거있죠?!

연속 학습할 때마다 00day learning streak 라며 너무 축하해주는 듀오링고 ㅎㅎ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꾸준히 매일 하고 있어요. 하루 딱 1개 학습이라도 하려고 다짐해봅니다.

아직 듀오링고 쓰는 방법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오답이 3개 이상이면 다시 학습할 때까지 잠시 기다려야 되는

뭐 그런 패널티가 있는 것 같았어요. 삘 받을 때 공부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면 짱나니까 왠만하면 안틀리도록 집중!!

그래서 정확도 100프로라고 또 칭찬해주는 듀오링고 ㅎ

저는 유료버전말고 무료만 쓰다보니 광고를 봐야하는데요. 특히나 게임광고가 ..상당히..길더라구요??

그땐 잠깐 눈 피로도 풀겸 눈을 감고 명상하고 있거나 다른 책을 읽고 있거나 하면서 시간 가도록 기다리는 편이에요.

듀오링고 저 부엉이 캐릭터가 엄청 으쌰으쌰 동기부여해주고 격려해주고 칭찬해주고 ~암튼 열심히 할 수 있게 개인튜터처럼 푸쉬해줘요.

그래서 지금 8일째, 아직 시들시들해지지 않고 잘 하고 있답니다.

듀오링고만으로 나 중국어 회화한다!!! 이렇게 자랑 포스팅 쓸 날이 언젠가 오길 바라면서..

이웃님들도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외국어가 있다면 듀오링고로 가볍게 시작해보시길 추천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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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추천, 한국사책 추천

벌거벗은 한국사 사건편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숨겨진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

일단 표지에 한국사 일타강사로 유명하신 최태성 선생님의 사진이 박혀있어서 재미있는 책이라고 확신했다.

티비에서 벌거벗은 한국사라는 프로가 방영되었나본데, 티비는 보지 않았다.

역사가 재미없고 지루한 과목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 선입견을 깰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고려의 무신정권과

소현세자 이야기

광복절에 얽힌 이야기가 특히나 기억에 많이 남고 

안창호 선생의 말로 끝난 페이지에서 눈물도 찔끔 흘렸다.

스포를 몇 개 하자면

일제 통치기간 때 우리 나라 말 못 쓰게 금지하고 일본어만 쓰게 강요한 것, 이순신전 등 조선의 영웅과 관련된 책을 금서로 정한 것이

매국노 이완용의 아이디어로 , 일본에게 자신해서 그 아이디어를 갖다 바쳤음.

8.15 광복 날 일본천황이 '패전'과 관련된 용어는 일절 쓰지 않고 어려운 어휘로 범벅을 한 라디오방송을 내보내는 바람에 광복 당일날 조선인은 광복을 한 줄도 몰랐음.

조선 총독부는 자기네들 안위를 위해 독립운동가 여운형과 거래해서 여운형이 원하는 거 다 들어주고 일본으로의 무사귀환을 도와달라고 했는데

뒤에서는 승전국 미국에게 조선의 독립운동가들 중에 공산주의자가 많다고 이간질을 시켰음.

그 말에 초조해진 미국은 미국이 한반도 땅에 들어올 때까지 일본보고 계속 조선을 맡아도 된다고 허락했음.

미국이 한반도에 들어오면 일본군이 완전히 나갈 줄 알고 조선인들이 바다로 미군을 환영하려고 나갔는데 일본군이 그런 조선인을 쏴죽였고 미국에게는 공산주의자라고 말해버림. 미국은 일본 편을 듬

일본땅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들을 조선으로 귀환시켜주겠다고 바다에 모이라고 하고 배에 태워서 바다 가운데에서 배를 폭파시켜 다 죽여버림. 

.

.

아마 이 스포 부분이 너무 강렬해서 이 책을 안 읽고는 못 베길 것이다. 

연대별로 쭈욱 사건들을 나열한 교과서와 달리 흥미를 유발할 만한 몇 가지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어 디테일하게 파고든 책이다.

벌거벗은 한국사 사건편이 너무 재미있었기때문에

인물편, 권력편 등 다른 시리즈도 읽어볼 생각이다.

역사에 관심을 가져보고 싶다면, 가슴 아픈 한반도의 역사를 가감없이 목격하고자 한다면 

어려운 역사책으로 넘어가기 전에 통과할 관문으로서 '벌거벗은 한국사'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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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인종 때 문신이 무신보다 더 대우받고 무신이 홀대받음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의 아들이 무신 정중부의 수염을 일부러 촛불로 그을려 태워먹고 화가 난 정중부가 김부식 아들을 팸

이걸 다 보고 있던 왕도 딱히 김부식 아들을 혼내지 않았고, 최고 관직에 있던 김부식은 자기 아들이 맞은거에 화가 나 정중부를 벌해달라고 청함.

왕은 정중부를 벌하지는 않고 잠시 피신 시킴. 정중부는 새파랗게 어린 문관에게 수염까지 잃고 모욕을 당했는데 오히려 본인이 피신을 해야 하는 상황에 1차로 딥빡이 옴.

인종의 아들 의종 때 의종은 연회 마니아였는데 그 때마다 문신들은 왕과 연회를 즐기고 여름엔 뙤약볕, 겨울엔 추위속에 무신들은 계속 호위를 해야했음.

무신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정변을 일으킬 기회만 노리고 있었는데 의종이 갑자기 연 무술대회에서 한 노장이 너무 힘이 들어 도망을 치려고 하자 급이 더 낮은 문신이 노장의 뺨을 갈기는 사건이 터짐. 왕과 문신들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 빡이 돈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키고 눈에 보이는 모든 문신들을 싹 다 죽이고 왕을 거제도로 유배시켜버림.

고려시대에는 왕건의 후손만이 왕이 되어야한다는 여론이 강했기 때문에 무신들이 왕권까지 차지할수는 없었음

그래서 의종의 동생이자 인종의 셋째 아들을 왕위에 올리고 그가 바로 명종임.

 

 

왕은 허수아비, 무신들이 최고권력자로 백성을 수탈하고 호의호식하는 무신집권 시대가 옴. 최씨 가문이 무신집권기의 최대 권력자가 됨.

그동안 몽골의 사신 저고여가 압록강 근처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몽골은 고려인이 살해했다고 믿음. 하지만 그당시 다른곳을 정복하느라 바빠서 바로 고려를 침입하지는 않고 6년이나 있다가 뒷북치며 고려를 공격함.

고려는 그당시 무신들이 전쟁에 대한 긴장감이 없이 연회를 즐기느라 바빴으므로 제대로 대비를 못했음. 세계 최강군대 몽골군이 고려로 쭉쭉 진격해오다가 귀주에서 막힘. 귀주에서 박서 장군을 중심으로 한 장수들이 필사적으로 몽골군을 막아내었고 그 작은 성안에서 최강 몽골 군대에 지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우는 것을 보고 몽골인조차도 ‘이건 하늘이 돕는것이지 사람의 힘이 아니다’라고 말을 함. 귀주성에서 누구의 도움없이 외롭게 4개월가량 싸우다가 근방의 13명의 장군이 도우러와서 몽골군을 물리침 

하지만 그 사이 중앙군은 몽골군에게 패해 개경이 함락당하고 고려는 몽골에 항복함. 몽골은 박서를 죽이라고 명했으나 고려는 그냥 박서를 해임하고 귀향시킴. 고려를 지키기 위해 중앙군의 도움없이 외로운 싸움을 했던 멋진 장군 박서도 이런 식으로 푸대접을 받게 되었음. (정치하는 놈들 다 싸이코패스인 것 같음.)

몽골군은 바다 싸움에는 약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최씨 정권은 도읍을 강화도로 옮김. 웃긴 것은 전란으로 가뜩이나 피폐해져있는 서민들의 삶은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강화도에 예쁜 궁궐과 정원을 가꾸느라 민초들을 노동력으로 계속 쓰면서 괴롭힘.

몽골은 고려가 자신들과 화친을 맺어놓고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자 열받아서 다시 처들어옴. 지금의 용인 지역 '처인성'이 경상도로 내려오는 주요 길목이었는데 여기서 몽골 장수 살리타가 승려 김윤후의 화살에 맞아 죽음. 당황한 몽골군이 달아남. 이때 처인성을 지키면서 몽골군과 싸우던 사람들은 모두 향,소,부곡에 사는 사람들로 사회적 계급이 낮고 차별대우를 받는 사회적 약자들이었음.

그 뒤로도 몽골은 고려를 계속 쳐들어왔고, 고려인들은 불교의 힘을 빌리고자 팔만대장경을 만듦. 몽골은 지나가는 고려땅마다 엄청나게 많은 민간인을 죽여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고 함. 충주성까지 다다랐을 때 그 곳에 김윤후가 있었음. 김윤후는 노비 문서를 태우며 누구든지 열심히 싸우면 관직을 받을 수 있다고 사람들을 독려했고 여기에 감흥을 받은 사람들이 죽기살기로 싸워 몽골군을 물리침.

몽골군의 침입은 30년이나 계속되었고 고려인들은 목숨바쳐 이에 대항함. 그러다가 최씨 무신정권의 권력자 최의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터지고 무신정권이 몰락하면서 몽골군과 화친을 맺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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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족의 습격과 게르만 민족의 이동

훈족은 아시아 초원에 살았던 유목민족이다. 

370년경 유럽 침략을 시작으로 140년 동안 유럽 대부분을 점령하며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말을 이용해 이동성이 뛰어나고 활을 사용했다.

게르만족 중에서 서고트족은 훈족의 침략을 피해 로마 제국으로 대거 이동했다.

로마는 서고트족을 로마에서 살게 해주었지만 점차 서고트족을 차별하기 시작했고 화가 난 서고트족이 반란을 일으켜 로마를 침략하게 된다.

로마가 혼란스러워지자 다른 게르만족들도 로마로 모여들었다. 이것이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다.

당시 로마는 부정부패로 썩어있었고 너무 거대한 영토로 하나로 다스리기가 힘이 들었기때문에 결국 395년에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가 되었는데, 대부분의 게르만족이 서로마로 향했다.

동로마는 비교적 경제가 튼튼하고 침입해 오는 게르만족을 잘 막아냈는데,  서로마는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데다가 수많은 게르만족의 침입에 시달렸다.

그러다 훈족이 서로마로 쳐들어왔고 서로마제국은 훈족의 왕 아틸라의 공격에 게르만족의 힘까지 빌려 이에 맞섰다.

갈리아의 카탈라우눔 전투가 그 중 하나다.

교황 레오1세가 아틸라를 만나 그를 설득해 로마를 떠나도록 했지만, 이미 서로마 제국의 기력은 쇠할데로 쇠해지고 말았다.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소년 황제였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게르만족 장군에 의해 폐위되고 서로마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프랑크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

게르만 민족의 이동이 끝날 무렵인 5세기 말에 프랑크 족이 프랑크 왕국을 세웠다.

프랑크 왕국의 초대 국왕인 메로빙거 왕조의 클로비스1세가 프랑크족을 통합하고 파리를 수도로 삼았다.

메로빙거 왕조는 자손들의 분열로 힘을 잃게 되고 계속되는 내분에 의해 가장 높은 관리인 궁재(피핀3세)가 왕의 업무를 보게 되었다.

피핀3세는 스스로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어 카롤링거 왕조의 시대를 열었다.

프랑크왕국은 로마 가톨릭과 관계를 다져나가며 서유럽의 기초를 형성하게 된다.

피핀3세의 아들 카를1세 (카롤루스 대제)가 즉위하고는 서유럽을 완전히 장악하고 통일시켰다.

카롤루스 대제 시대에 프랑크 왕국은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리게 되었다. 또한 문예 부흥에도 힘을 쓰고 학문과 예술을 후원했다.

카롤루스 대제의 계승자 루트비히1세가 죽은 후 프랑크 왕국은 세 나라로 분열되었는데 이 세 나라가 이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의 기초가 된다.

세 나라로 분열되는 당시 동프랑크, 중프랑크, 서프랑크로 나뉘어졌는데 서프랑크는 노르만족(바이킹) 침입에 시달리다가 노르만족에게 노르망디 지역 땅을 내주어 살게 했다.

동프랑크의 하인리히1세가 동프랑크의 땅을 넓혔고, 아들 오토1세가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아 동프랑크의 통일을 추진했다. 오토1세는 이후 신성로마제국(첫 이름은 오토제국)의 창시자가 된다. 신성로마제국은 독일의 옛 명칭이다.

비잔티움 제국

비잔티움 제국은 서로마 제국의 몰락 후 살아남은 동로마 제국을 말한다. 

황제가 신격화되어 왕권이 강했다.

하지만 너무 넓은 영토 탓에 외부 침략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보호하는 거대한 테오도시우스 성벽과 바다 전투에서 큰 힘을 발휘한 그리스의 불 덕분에 외세의 침입에도 1000년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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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작은 돈의 기적 : 푼돈 재테크

 

푼돈 재테크: 내가 Pick한 문장들 (전자책 기준으로 페이지 표기)

한잔에 3달러하는 스타벅스 커피 대신 회사나 집에서 스스로 커피를 끓여마시면 30년간 이자를 포함해 약 5만 5000여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5500만원이 절약된다고 한다. (32p/454p)

워싱턴 포스트지의 계산법을 따를 경우 담뱃값 4500원으로 30년간 절약할 수 있는 돈은 8300만원이 된다 (33p/454p)

푼돈 재테크가 높은 수익률을 나타내는 이유는 대부분 허투루 날리는 푼돈에는 '반복성'과 '중독성'이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담배, 커피등은 우리들이 소소하게 지출하는 대표적인 푼돈 킬러들이다. 적은 돈이지만 끈질기게 돈을 요구한다. 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그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35p)

푼돈을 아낄때마다 그 만큼의 돈이 통장에 쌓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아낀 푼돈이 미래의 목돈이 아닌 또다른 푼돈으로 지갑에서 빠져나간다. (39P)

생활이 윤택해졌다고 푼돈을 우습게 생각하고 절약하는 습관을 잊어버린다면 피땀으로 쌓아올린 부가 어느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71p)

주식형 펀드나 우량주식 역시 원금을 까먹을 위험이 있다. 그러나 적금은 그럴 염려가 전혀 없다. 내 원금이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138p)

하루 5500원을 아끼면 연봉의 10퍼센트가 인상되는 셈이다. (169p)

조금만 아껴도 엄청난 연봉 상승과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170p)

편하게 살려는 미꾸라지를 메기가 끊임없이 긴장시키듯이 푼돈은 편하고자 하는 우리의식에 끊임없이 개입한다. (188p)


매일 쓰는 일상의 돈에 무감각해진 당신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대단한 재테크 기술을 쓰지 않고, 단지 푼돈이 새어나가는 것만 막아도 큰 목돈을 굴릴수 있다는 요지의 책이다.

정보만 습득하고 덮어도 되는 책이 아니라 옆에 끼고 틈틈히, 자주 읽어보면서 

느슨해진 마음을 자꾸 잡아주는 내적동기 생성용으로 비치해두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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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ooc 에서 드디어 유데미 구독권이 열렸어요!

온갖 IT관련 최신 강의를 다 들을 수 있는 유데미

컴퓨터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쯤 들어보셨을텐데요.

워낙 인기가 많아서 구독권이 엄청 빨리 소진되어서 한동안 유데미 구독권을 신청할 수 없었는데

오늘 혹시나 해서 들어가봤더니 구독권 신청 버튼이 활성화되어있네요.

 

전 현재 코세라에 원하는 강의가 있어서 코세라 구독권 신청해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요.

IT쪽으로 전문화된 유데미에 관심 있으신 잇님들이 분명 있을 것 같아 

핫한 소식을 들고왔습니다.

먼저 케이무크 K Mooc 홈페이지에 들어가셔서요.

상단 배너에서 유데미 구독권 신청 광고 나오면 클릭하셔도 되고

상단 메뉴 중 해외강의 들어가셔서 유데미 찾으시면 됩니다.

구독권 신청하고 승인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메일로 아마 승인 통보가 올거에요.

코세라 구독권도 승인 되는데 일주일정도 걸린것 같아요.

유데미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이번 기회에 유데미 구독권 꼭 신청하셔서 직무역량계발 야무지게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나라 IT 최강 인재가 당신이길 응원하며, 포스팅 마칠게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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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 회군

○ 1388년 명나라와 싸우기 위해 요동으로 떠난 고려 군대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했다.

○○ 이 회군을 지휘한 이성계가 요동 정벌을 명령한 우왕과 최영의 명령을 어기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 이성계는 고려 말 부패한 권문세족을 비판하는 신진사대부와 손을 잡았고 반원친명정책을 폈다.


신진 사대부의 갈등

○ 신진사대부가 온건파와 급진파로 나뉘게 되었다.

○ 급진파 정도전은 이성계와 손을 잡고 우왕은 공민왕이 아닌 신돈의 아들이므로 우왕의 아들, 창왕의 왕위 계승을 반대하였고 이성계의 친척인 공양왕을 세웠다.

○ 급진파는 모든 귀족과 관리가 가진 토지를 거두어들여 다시 나누는 새로운 토지 제도인 과전법을 제정하였다.


역성 혁명

○ 급진파 정도전은 왕조 자체를 바꾸는 역성 혁명을 추진했다.

○ 정몽주, 이색 등 온건파는 고려 왕조를 유지하고자 했다. 

○ 이성계 아들 이방원이 정몽주를 회유하고자 했지만 실패했고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인다.

○ 이성계 지지자들에 의해 이성계가 새로운 왕으로 추대된다.

○ 조선의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할 정도로 정도전을 새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새 나라 조선

○ 건국이념으로 유교를 선택했다.

○ 모든 고을에 국립학교 향교를 세우고, 서울에는 성균관을 세워 유교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 고려의 부패 원인을 불교라고 생각해서 팔관회, 연등회 등 불교 관련 의례를 폐지했다.

○ 도첩제를 실시하여 허가를 받아야만 승려가 될 수 있도록 제한하였다.

 

○ 강하고 큰 나라는 섬기고, 일본 같은 이웃 나라와는 우호적으로 교류하겠다는 사대교린 정책을 썼다.

○ 고려의 도읍이었던 개성(개경)을 떠나 한양을 새로운 도읍지로 정했다.

○ 정도전은 재상중심의 정치를 원했고 태조 아들 이방원은 정도전의 생각에 가장 강력히 반발했다.

○ 태조가 둘째 부인에게서 얻은 막내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 첫째 부인의 자식들은 불만이 클 수 밖에 없었고 , 개국 공신임에도 인정받지 못했던 이방원의 불만이 가장 컸다.

○ 정도전이 왕자들이 거느린 사병을 제거하려고 하자 이방원이 먼저 정도전을 제거해버린다

○ 이성계는 둘째 아들 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그가 정종이 된다.

○ 정종은 자식이 없었으므로 다시 왕자들의 싸움이 일어났고 결국 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한다.


태종 이방원

○ 태종 이방원은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 직접 왕에게 보고하는 6조 직계제를 실시하였다.

○ 외척이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 되자 처남 넷을 모두 죽였다.

○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 되는 세력은 모두 무자비하게 죽였다

○ 전국을 8도로 나누고 여러 군현으로 나눈 후 도에 관찰사를 파견하고 모든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여 모든 지방을 통치하고자 했다.

○ 호적제도를 정비하고 호패제를 실시했다.

○ 노비변정도감을 설치하여 권문세족에 의해 불법적으로 노비가 된 사람을 다시 양인으로 되돌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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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부흥운동

668년,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지만 고구려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고구려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신라는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무너뜨린 장본인이지만

삼국통일 이후 당나라가 신라까지 탐내자 당나라에 등을 돌리고 고구려의 부흥운동을 지지하였다.

당나라의 인질로 잡혀갔던 보장왕이 풀려나고 말갈족까지 끌어들여 고구려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보이자 

보장왕을 다시 당나라로 끌고 가버렸다.

고구려 부흥운동을 잠시 주춤해졌지만 당나라에 자리잡고 있던 고구려 유민들에게서 부흥 운동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대조영과 새나라 진

 

고구려 유민 걸걸중상과 아들 대조영이 거란족,말갈족과 함께 당나라에 저항하였다.

비록 거란족이 당나라에 항복하였지만

걸걸중상과 말갈족의 걸사비우는 항복하지 않고 계속 세력을 키워나갔다.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걸사비우는 죽고 대조영은 지도자를 잃은 말갈족까지 다 이끌고 당나라와 싸웠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당나라의 힘이 미치지 않는 동모산 위에 새 나라 '진'을 세웠다.


발해의 탄생

 

대조영은 당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은 돌궐과 신라에게 사신을 보내 새 나라 건립을 알리며 외교관계를 맺었다.

'진' 나라가 점점 세력을 넓히자 당나라도 더이상 '진'나라를 우습게 볼 수 없었고 사신을 보내 

발해 군왕이라는 벼슬을 내려 어엿한 나라로 인정하였다.

이때부터 나라 이름이 '진'에서 '발해'로 변경되었다.

발해로 흡수되지 않았던 흑수말갈족이 당나라의 편에 들어갔고, 발해는 흑수말갈족에게 선제 공격을 하면서 당나라와 다시 싸울 수 밖에 없었다.

당나라는 계속해서 발해를 공격을 해왔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당나라와 사이좋게

 

대조영의 아들 무왕 때까지만 해도 당나라와 사이가 안좋았으나 3대왕 문왕이 즉위하고는 당나라와 친선관계를 맺었다.

문왕은 당나라의 앞선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당나라의 정치 제도를 가져와 3성 6부 중앙 통치 기구를 만들었다.

3성은 정당성, 선조성, 중대성

6부는 충,인,의,지,예,신으로 유교 덕목을 따서 이름지었다.

발해의 국력이 올라가자 당나라는 문왕에게 발해 군왕에서 발해 국왕으로 더 높은 벼슬을 주었다.


해동성국

 

10대 선왕 때에는 흑수 말갈 정벌, 신라의 영토도 일부 차지하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때보다 두 배 가까이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다.

넓은 영토와 융성한 문화를 가진 발해를 당나라는 해동성국이라고 불렀다.

한반도 북쪽은 발해가, 아래쪽은 신라가 나라를 이루어 이 때 역사를 남북국시대라고 한다.

문화의 면에서는 발해 건국 초기에는 고구려 문화가, 문왕때부터는 당나라 문화가 널리 퍼졌고

지방에는 말갈족의 문화가 널리 퍼져있었다.

발해의 영토가 너무 넓어서 중앙의 힘이 지방까지 미치지 못하다보니 각 지방마다 고유한 문화가 남아있었고 중앙문화와 섞이지 못해 이후 발해의 쇠퇴의 원인이 되었다.


발해의 멸망

 

907년에 당나라 멸망, 통일 신라도 세개의 나라로 분열되면서 동아시아의 격변의 시대가 열렸는데 

해동성국 발해도 이들과 함께 쇠퇴하기 시작했다. 

반면 유목생활을 하던 거란족이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거란족장 야율아보기가 발해에 쳐들어와 한달만에 발해를 멸망시켰다.

발해도 예전 고구려 유민들이 그랬던것처럼 발해 부흥운동을 여기저기서 벌였지만 중심세력이 없어서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거란의 횡포를 피해 많은 발해 주민들이 고려로 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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