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고구려 건국

 

 

 

 

주몽, 고구려를 세우다.

 

 

 

건국설화-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와 하늘의 신 해모수가 사랑에 빠졌다.

 

 

 

이를 알게 된 하백이 유화를 내쫒았는데, 부여의 금와왕이 이를 불쌍하게 여겨 유화를 거두었다.

 

 

 

알에서 태어난 고주몽이 활 실력도 뛰어나고 각종 무예에 뛰어나니 금와왕의 왕자들이 자신들의 자리에 위협을 느껴 주몽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에 주몽이 남쪽땅으로 내려와 졸본에 자리를 잡고 고구려를 세웠다.

 

 

 

유리왕, 대무신왕.. 고국천왕 등 왕위를 이어오면서 왕권이 더욱더 강해졌고, 계루부 고씨가 계속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

 

였다.

 

 

 

220년 한나라가 망한 후 중국은 위,,오 세 나라로 갈라져 전쟁이 극심해졌다.

 

 

 

이 중 힘이 센 위나라가 고구려를 자주 침범했고, 동천왕, 미천왕때에 위와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고국원왕때는 전연이라는 나라가 침입하여 고국원왕의 어머니와 왕비를 잡아가고, 미천왕의 무덤을 훼손하는 등 비통

 

한 일들을 겪었다.

 

 

 

고국원왕 자신도 백제(근초고왕때) 와의 싸움에서 백제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그 뒤를 이은 소수림왕은 전연과 백제에 복수하는 것을 미루고, 나라에 제도를 정비하는 데 먼저 힘을 기울였다.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이라는 교육 기관을 세웠으며, 율령을 반포하였다.

 

 

 

 

 

 

고구려의 성장

 

 

 

 

391년 광개토대왕이 17살의 나이로 즉위하자, 할아버지 고국원왕의 한을 풀고 잃어버린 고구려의 땅을 되찾기 위해 백제와 전연(->후연)의 정복활동을 시작하였다.

 

 

 

백제의 관미성과 한성을 차례로 함락시키고 한강 이북 지역을 차지하였다.

 

 

 

고구려가 왜의 침입을 받고 있는 신라를 구원하러 간 사이, 후연이 침입하여 땅을 빼앗아 갔고, 이로써 본격적인 후연 정복 활동을 함으로써 동북아시아 최고 강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즉위한 후, 중국과는 외교적으로 정면충돌을 피하고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고자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장수왕의 남진정책에 반발하는 백제가 신라와 군사 동맹을 맺어 맞섰으나 장수왕은 백제 도읍 한성을 함락시키고 개로

 

왕을 죽였다.

 

 

 

신라도 공격하고 남한강 가에 중원 고구려비를 세웠다.

 

 

 

 

 

 

고구려의 문화

 

 

 

 

 

 

 

 

 

 

 

 

 

 

 

 

 

 

 

 

 

신랑이 신부집에서 머물며 일을 해주다가 아이를 낳고 , 그 아이가 다 자라면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데릴사위제였다.

 

 

 

고구려의 거문고 연주자인 왕산악이 거문고를 연주하면,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출 정도였다고 한다.

 

 

 

씨름이나 수박회, 활쏘기 등으로 무예 실력을 겨루었다.

 

 

 

성쌓기를 잘해서 수많은 산성을 연결한 덕분에, 물샐틈 없는 방어막을 구축하였다.

 

 

 

 

 

흔들리는 고구려

 

 

 

 

장수왕이 죽은 후 왕권이 점차 약해지다가 귀족들의 권력 다툼이 심해져 나라가 혼란에 휩싸였다.

 

 

 

백제와 신라가 손을 잡고 쳐들어와 한강 유역을 도로 빼앗아 갔다.

 

 

 

위쪽으로는 돌궐족이 자주 침범해와서 남북으로 위기를 맞게 되었다.

 

 

 

589, 수나라가 중국 대륙을 통일 하였다.

 

 

 

수 문제 때 고구려를 쳐들어왔으나 장마로 인해 되돌아갔다.

 

 

 

수 양제 때 우중문을 선두로 다시 쳐들어왔으나 을지문덕 장군의 전략에 말려 살수에서 전멸하였다.(살수대첩)

 

 

 

수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섰다.

 

 

 

처음에는 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연개소문이 왕을 죽이고 모든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을 빌미로 당이 처들어왔

 

.

 

 

 

패전을 거듭하다 마지막 안시성을 남겨두고 지친 당나라 군대가 철수함으로써 다시 한번 고구려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중국과의 기나긴 전쟁으로 고구려 국력이 급격이 쇠퇴하였다.

 

 

 

 

 

 

 

 

 

 

 

 

 

 

 

 

 

 

 

 

 

고구려의 멸망

 

 

 

백성의 삶이 고달파졌고, 연개소문의 독재로 기득권층의 원성도 자자했다.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무너뜨리고 고구려에 처들어왔다.

 

 

 

연개소문이 죽은 후 치열한 권력다툼과, 지배자층의 배신으로 인해 나당연합군에 멸망당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