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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 

멀리는 못가고 집 근처 사찰에서 연등 구경하고 왔습니다.

저는 조계종 사찰을 주로 가는 편인데

집 근처는 천태종이 훨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 그 쪽으로 향했어요.

 

해가 슬쩍 산넘어갈 때쯤 가서 연등이 훨씬 밝고 멋스럽게 찍혔습니다.

연등 공양하신 분들의 바람이 모두 다 이루어지길 저도 기원해요 ^^ 

연등 참 이쁘더라구요.

저 용은 어떻게 만든건지 불이랑 연기도 뿜고 막!

부모님이랑 구경 나온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어요 ^^

화려함의 끝판왕!

 

불기가 잘못 전해지고 있어서 

사실상 부처님의 효험이 더이상 세속에 남아있지 않다고 들은 바가 있는데요. (팩트 체크 안됨, 카더라 통신 출처)

그러던가 말던가

부처님의 말씀은 불기와 상관없이 인생의 큰 버팀이 됨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모두들 마스크 잘 끼고 거리두기 하면서 감상을 하던데-

그래서 실내로 들어가 절을 하는 건 패스하고 야외만 구경했습니다.

불상에 절 한번 하구요. 

코끼리도 멋지게 만들었던데

코끼리 소리가 끊임없이 나와서 귀가 아팠답니다 ㅜㅜ

소리는 빼지 그러셨어요 ㅜㅜ

 

10층 등불탑은 너무 높아서 카메라에 다 담기지도 않았어요.

사찰에서 연등 행사에 참 공을 많이 들였구나~ 하고 느껴졌어요. 


얼마전 혜민스님 사건, 스님 N번방 개설 사건 등 종교인이 연루된 일들이 있어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부정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종교인들은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이 기대되기 때문에

실망도 더욱 큰 것 같아요.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주의, 쾌락에 몰입하는 환락주의가 팽배한 요즘 세태에 

종교인들은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 건전한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귀한 자리에 있음을 깨닫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포교활동 하셨음 좋겠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예수 천국, 불교 지옥'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부처님은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합니다'

이딴 피켓을 들고 사찰 앞에서 찬송가 외쳤던 사람들, 쪽팔린 줄 아시고요. SHAME ON YOU!

교인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정신병자 짓거리임을 알아두세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깊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행복하게 공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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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하고 어진 애민 정치를 하였다.

 

★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도 만파식적( 온갖 풍파를 잠재우는 피리)을 나라의 보배로 삼고 평화로운 정치를 펼치고자 했다.

 

★ 신문왕의 장인 김흠돌이 난을 일으켰다. 신문왕은 김흠돌을 비롯하여 왕의 권위에 반발하는 세력을 단호하게 억누르면서 유교 사상으로 충성스러운 신하를 기르고자 국학을 설치하였다.

 

★ 신문왕 때 관리에게 관료전이라는 토지를 나누어 주었고 관직이 높은 귀족에게는 녹읍을 주었다.

관료전은 그 땅에서 나는 수확물의 일부를 가질 수 있었고, 녹읍은 수확물 뿐 아니라 그 땅에 사는 농민들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 나라의 행정구역은 9주 5소경, 군대는 9서당 10정으로 구성되었다.

 

★698년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발해를 세우면서 신라가 발해와 국경을 마주하게 되자, 원수 지간이었던 당나라와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당나라, 발해, 일본과 활발한 국제교류를 하게 되었다.

 

★ 신라 승려 혜초는 서역땅(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파키스탄 등)까지 여행하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기기도 하였다.

 

 

 

★ 신라의 골품제가 통일신라에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원래 왕족인 성골은 진덕여왕을 끝으로 사라지고 무열왕부터 진골 출신이 왕위에 올랐다.

 

★ 골품에 따라 벼슬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불만이 많았다.

 

★ 왕경에는 귀족들 대부분이 모여살았기 때문에 금으로 장식한 금입택 등 호화로운 집들이 많았다.

 

★ 왕경에는 사치를 부리는 귀족들과 너무나 가난하게 사는 평민들이 있어서 극심한 빈부격차가 존재했다.

 

 

 

 

★ 왕족과 귀족만이 누렸던 불교가 통일 이후 일반 백성에게까지 널리 퍼져나갔다.

 

★ 6두품 출신의 승려 원효는 진리는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아가 불교 대중화에 힘썼다.

 

★ 진골출신의 의상은 당나라에서 화엄 사상(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부처 앞에서 평등하다) 을 공부하고 돌아와 여러 절을 지으며 제자 양성에 힘썼다.

 

★ 찬란한 불교유산 : 불국사, 석가탑, 다보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

 

 

 

★ 신문왕 이후 100여 년간 평화롭고 안정된 시절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742년 경덕왕이 왕위에 오른 후 왕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경덕왕이 죽고 어린 아들 혜공왕이 즉위하자 왕권이 약해지고 반란도 자주 일어나게 되었다.

 

★ 혜공왕과 왕비가 살해된 이후 왕위를 놓고 끊임없는 권력투쟁이 일어났다.

 

★ 김헌창의 난을 계기로 지방에서도 점차 본인의 세력을 키우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당시 지방 실력자 중 한명이 장보고 였는데, 당나라 해적을 단속하기 위해 설치된 청해진에 장보고가 투입되어 해적을 소탕하고 바다 무역을 주도하였다.

 

★ 장보고는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염장이라는 사람에 의해 살해당했다.

 

 

 

 

 

 

 

 

으음..

 

통일신라 시대에 대해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셨나요?

 

한국사를 공부하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정리포스팅이었길 바랍니다 ^^

 

다음시간에는 통일신라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던 발해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죠.

 

그럼 다음시간에 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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