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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_삼국시대, 삼국의 외교

 

 

<<삼국과 동아시아>>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나라의 기틀을 갖춰갈 때 중국은 516국 시대로 혼란의 시대였다.

 

고구려는 이 나라중 전진과, 백제는 동진과 교류하면서 불교를 들여왔다.

 

 

 

백제가 받아들인 불교는 다시 왜로 전해졌다. 백제는 불교뿐 아니라 한문학, 도자기, 무기 제작 기술등도 왜에 알려주었

 

.

 

 

 

중국의 516국 시대가 끝나고 북쪽은 북위, 남쪽은 송나라가 세워졌는데

 

고구려는 북위와, 백제는 송나라와 교류를 활발하게 하였다.

 

 

 

신라가 뒤늦게 나라의 기틀을 만들어 갈 때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였고 수나라와 국경을 접한 고구려는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이때 고구려가 돌궐과 동맹을 맺게 되고, 신라 백제는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수나라와 동맹을 맺는다.

 

 

 

신라와 적대관계였던 백제가 고구려에 힘을 실어줌과 동시에 왜를 끌어들였다

 

 

 

 

돌궐+고구려+백제+<--------------------> 수나라+신라

 

 

 

 

중국과 책봉, 조공의 절차를 거쳐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고구려가 직접 서역과 무역을 하려고 하자, 고구려와 서역간의 중개 무역으로 이익을 챙겼던 당나라와의 사이가 멀어지

 

게 되었다.

 

 

 

수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한 당태종은 고구려를 정복시키겠다는 야망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고구려는 동맹국을 찾

 

아나서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고구려는 서역의 나라인 돌궐과 동맹을 맺고 당을 견제하려 하였다.

 

 

 

고구려는 서역뿐 아니라 유럽의 로마와도 문물 교류를 하였고, 이러한 다양한 문물은 백제나 신라에까지 전해졌다.

 

 

한강 유역을 먼저 차지했었던 백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항해 기술이 특히 뛰어났다. 그래서 배를 타고 해외로 나가 교류

 

를 했고, 특히 왜와 가장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그래서 일본에는 지금도 백제와 관련된 마을 이름이나 유물이 많이 남아있

 

.

 

 

 

고구려 승려 혜자는 일본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백제의 오경박사 왕인도 왜의 사신으로 가서 태자와 신하들을 가르쳤다.

 

 

 

고구려 승려 담징은 왜의 호류사에 금당벽화를 남겼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말이 같고 풍습이 비슷했지만, 세력 다툼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고구려+ 신라 vs 백제 :

 

고구려 백제가 세력 다툼을 할 때 신라는 새로운 문물을 고구려를 통해 접했고, 고구려는 신라를 보살펴야 할 나라로 생각했다.

 

고구려 vs 신라 + 벡제 :

 

고구려가 신라를 신하국처럼 대하고 내정에 간섭하자, 신라는 차츰 백제와 교류를 시작했다. 고구려가 이에 신라를 공격하자, 신라는 백제의 지원을 받아 고구려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었다.

 

 

고구려 vs 신라 vs 백제 :

 

동맹을 맺은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를 공격해서 한강 유역의 땅을 빼앗아 한강 상류는 신라가, 한강 하류는 백제가 차지하게 되었다. 신라는 곧 동맹국이었던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하류 일대의 땅까지 빼앗아버렸다.

 

고구려 + 백제 vs 신라 :

 

한강을 차지한 신라가 당나라와 마음껏 교류하고 세력을 확장하자, 고구려와 백제가 힘을 합쳐 신라를 공격하기도 하였.

 

 

 

블로그 정비 과정중에 삭제된 한국사 포스팅을 다시 게재하는 바람에

 

연대순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뒤죽박죽 되어버렸네요 ㅜㅜ

 

조선시대까지 정리된 포스팅이 이미 있기 때문에

 

다음 포스팅부터는 조선시대 이후부터 정리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공부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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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건국

 

 

 

 

주몽, 고구려를 세우다.

 

 

 

건국설화-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와 하늘의 신 해모수가 사랑에 빠졌다.

 

 

 

이를 알게 된 하백이 유화를 내쫒았는데, 부여의 금와왕이 이를 불쌍하게 여겨 유화를 거두었다.

 

 

 

알에서 태어난 고주몽이 활 실력도 뛰어나고 각종 무예에 뛰어나니 금와왕의 왕자들이 자신들의 자리에 위협을 느껴 주몽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에 주몽이 남쪽땅으로 내려와 졸본에 자리를 잡고 고구려를 세웠다.

 

 

 

유리왕, 대무신왕.. 고국천왕 등 왕위를 이어오면서 왕권이 더욱더 강해졌고, 계루부 고씨가 계속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

 

였다.

 

 

 

220년 한나라가 망한 후 중국은 위,,오 세 나라로 갈라져 전쟁이 극심해졌다.

 

 

 

이 중 힘이 센 위나라가 고구려를 자주 침범했고, 동천왕, 미천왕때에 위와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고국원왕때는 전연이라는 나라가 침입하여 고국원왕의 어머니와 왕비를 잡아가고, 미천왕의 무덤을 훼손하는 등 비통

 

한 일들을 겪었다.

 

 

 

고국원왕 자신도 백제(근초고왕때) 와의 싸움에서 백제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그 뒤를 이은 소수림왕은 전연과 백제에 복수하는 것을 미루고, 나라에 제도를 정비하는 데 먼저 힘을 기울였다.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이라는 교육 기관을 세웠으며, 율령을 반포하였다.

 

 

 

 

 

 

고구려의 성장

 

 

 

 

391년 광개토대왕이 17살의 나이로 즉위하자, 할아버지 고국원왕의 한을 풀고 잃어버린 고구려의 땅을 되찾기 위해 백제와 전연(->후연)의 정복활동을 시작하였다.

 

 

 

백제의 관미성과 한성을 차례로 함락시키고 한강 이북 지역을 차지하였다.

 

 

 

고구려가 왜의 침입을 받고 있는 신라를 구원하러 간 사이, 후연이 침입하여 땅을 빼앗아 갔고, 이로써 본격적인 후연 정복 활동을 함으로써 동북아시아 최고 강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즉위한 후, 중국과는 외교적으로 정면충돌을 피하고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고자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장수왕의 남진정책에 반발하는 백제가 신라와 군사 동맹을 맺어 맞섰으나 장수왕은 백제 도읍 한성을 함락시키고 개로

 

왕을 죽였다.

 

 

 

신라도 공격하고 남한강 가에 중원 고구려비를 세웠다.

 

 

 

 

 

 

고구려의 문화

 

 

 

 

 

 

 

 

 

 

 

 

 

 

 

 

 

 

 

 

 

신랑이 신부집에서 머물며 일을 해주다가 아이를 낳고 , 그 아이가 다 자라면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데릴사위제였다.

 

 

 

고구려의 거문고 연주자인 왕산악이 거문고를 연주하면,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출 정도였다고 한다.

 

 

 

씨름이나 수박회, 활쏘기 등으로 무예 실력을 겨루었다.

 

 

 

성쌓기를 잘해서 수많은 산성을 연결한 덕분에, 물샐틈 없는 방어막을 구축하였다.

 

 

 

 

 

흔들리는 고구려

 

 

 

 

장수왕이 죽은 후 왕권이 점차 약해지다가 귀족들의 권력 다툼이 심해져 나라가 혼란에 휩싸였다.

 

 

 

백제와 신라가 손을 잡고 쳐들어와 한강 유역을 도로 빼앗아 갔다.

 

 

 

위쪽으로는 돌궐족이 자주 침범해와서 남북으로 위기를 맞게 되었다.

 

 

 

589, 수나라가 중국 대륙을 통일 하였다.

 

 

 

수 문제 때 고구려를 쳐들어왔으나 장마로 인해 되돌아갔다.

 

 

 

수 양제 때 우중문을 선두로 다시 쳐들어왔으나 을지문덕 장군의 전략에 말려 살수에서 전멸하였다.(살수대첩)

 

 

 

수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섰다.

 

 

 

처음에는 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연개소문이 왕을 죽이고 모든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을 빌미로 당이 처들어왔

 

.

 

 

 

패전을 거듭하다 마지막 안시성을 남겨두고 지친 당나라 군대가 철수함으로써 다시 한번 고구려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중국과의 기나긴 전쟁으로 고구려 국력이 급격이 쇠퇴하였다.

 

 

 

 

 

 

 

 

 

 

 

 

 

 

 

 

 

 

 

 

 

고구려의 멸망

 

 

 

백성의 삶이 고달파졌고, 연개소문의 독재로 기득권층의 원성도 자자했다.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무너뜨리고 고구려에 처들어왔다.

 

 

 

연개소문이 죽은 후 치열한 권력다툼과, 지배자층의 배신으로 인해 나당연합군에 멸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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