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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8년, 조선 최고의 성군 세종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세종은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애초에 세자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 태종의 맏아들인 양녕대군이 세자교육을 소홀히 하고 놀기에만 열중하자 태종은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세자로 임명하였는데, 그가 바로 세종대왕입니다.

 

○ 세종은 학문을 사랑하고 책읽기를 무척 좋아하는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 세종은 유교의 정치 이념에 따라 민본 정치, 애민 정치를 실현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 세종의 맏아들 문종이 그 다음 왕위를 물려받았으나 병으로 일찍 죽었고, 문종의 어린 아들 단종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단종은 12세의 어린나이로 즉위해서 김종서, 성삼문 등 관료들의 도움으로 정치를 해 나갔는데, 이 때문에 왕권이 약화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단종의 삼촌인 수양 대군이 김종서를 죽이고 단종의 왕위를 빼앗아 왕이 되었는데 (계유정난) 그가 바로 세조입니다. 왕위 찬탈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막상 왕이 되고 나서는 강력한 왕권 강화를 발판으로 삼아 제도와 문화 정비 작업을 활발하게 추진하는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 조선 최고의 법전 경국대전의 편찬 작업도 이때 시작되었습니다.

 

○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은 선비들을 사육신, 단종을 위해 벼슬을 마다하고 절의를 지킨 선비들을 생육신이라고 부릅니다.

 

○ 세조 다음의 왕인 예종도 문종 처럼 일찍 죽고 13세의 성종이 왕위를 이어받았는데, 어린 나이때문에 정희 대비가 성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였습니다.

 

성종이 스무살이 되어서는 직접 정치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세종과 마찬가지로 어진 정치를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세조 때 없어진 경전 제도(신하와 왕이 경전을 읽으며 토론하고 국가 일을 의논)를 시행하고 홍문관을 학술 연구 기관으로 삼았습니다.

 

○ 성종의 왕비 윤씨가 투기가 심해 성종 얼굴에 생채기를 내는 일이 발생하자 사약을 내렸는데, 이 일로 아들 연산군때 사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 세종 때 특별히 집현전을 아껴서 학문이 뛰어난 선비들을 뽑아 학문 연구에만 힘쓰도록 장려하였는데, 그 덕분에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와 같은

뛰어난 학자가 많이 나오게 됩니다.

 

○ 집현전에서 고려사, 오례의, 팔도지리지, 용비어천가, 삼강행실도, 의방유취 등의 서적을 편찬하여 학문과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었습니다.

 

○ 세종은 우리의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 백성들이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문서를 읽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해서 1446년 훈민정음을 널리 반포하게 됩니다. 많은 조정 관료들이 한자를 쓰지 않고 다른 문자를 쓰는 것이 오랑캐와 같다며 반대하였으나 세종은 백성들을 위해 단호하게 훈민정음을 시행시킵니다.

 

○ 세종이 독자적인 천문학을 발달시키고자 경북궁 내 간의대라는 천문대를 설치하고 한양의 해, 달, 별을 관찰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측우기를 발명하게 해서 비의 양을 측정하는 등 과학에 관심을 많이 보였습니다.

 

○ 세종의 과학 사랑 덕분에 노비 장영실은 과학자로 출세하게 되었고 세종의 사랑을 듬뿍 받아 간의,  자격루, 혼천의, 앙부일구 등의 발명품을 남겼습니다.

 

○ 우리나라 토지와 기후에 알맞게 농업 기술을 정리하여 농사직설을 편찬하였습니다.

 

 

 

 

○ 외교적으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자, 명나라가 무리한 공물을 요구해도 참고 받아들이는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문화를 수입하였습니다.

 

○ 덕분에 명나라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수시로 조선에 처들어와 백성을 괴롭히는 왜구와는 갈등이 많았습니다.

 

○ 세종 때 이종무가 쓰시마 섬을 정벌하여 다시는 조선 침략을 하지 않겠다는 왜구의 약속을 받아옵니다.

 

○ 조선 초 한반도 북쪽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 여진족과 압록강, 두만강 일대에서 잦은 싸움이 일어났는데, 세종 때 김종서가 두만강 근처 여진족을 몰아내고

4군 6진을 개척함으로써 오늘날과 비슷한 국경이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 세조 때 시작한 조선 최초의 종합 법전인 경국대전이 성종 때 간행되었습니다. 고려때에는 왕의 말 한마디 한마디로 일이 정해졌기 때문에 구체적인 법에 의해 통치되는 법치국가로서의 조선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사건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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