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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000년쯤 나일 강 유역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일 강 유역은 물이 풍부해 살기가 좋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긴 나일강을 따라 마을을 이루며 살았다.

나일강은 해마다 주기적으로 물이 불어나 넘쳤는데 물이 빠지고 나면 상류에서 떠 내려온 검은 흙이 하류에 쌓였다. 그 흙은 매우 기름져 곡식이 잘 자라서 잉여 농산물도 많이 생산되어 사람들은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물이 너무 넘칠 때를 대비해서 둑을 쌓고 물이 가물때를 대비해 저수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일 강 범람을 예측하기 위해 별을 관찰하였고 관찰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도 만들었다.

이렇게 기원전 3000-4000년쯤 나일강 유역에서 이집트 문명이 꽃피우게 되었다.

살기 좋은 나일강 유역에 인구가 늘어나자 이를 지휘할 리더가 필요해졌다. 나일강가에는 지도자가 다스리는 여러 마을이 생겼고 서로 땅과 재산을 차지하려고 싸우면서 작은 왕국들이 만들어졌다.

기원전 3200년쯤에는 하이집트와 상이집트 두 개의 커다란 나라만 남았다.

하이집트는 비옥한 강의 하류, 상이집트는 상대적으로 척박하고 고립된 강의 상류에 위치해있었다.

하이집트는 도시들끼리 싸우는 바람에 나라가 혼란스러웠는데 그 틈을 타 기원전 3100년쯤 상 이집트의 왕 메네스가 하 이집트를 점령하여 이집트를 통일했다.

이집트는 사막과 바다로 둘러싸여있어 다른 나라의 위협없이 평화로웠다. 

메네스가 이집트를 통일하고 500년이 지나 더욱 안정되고 힘이 커진 고왕국 시대가 열렸다.

파라오 덕분에 더욱 살기가 좋아지자 백성들은 파라오를 더욱 믿고 따랐다.

파라오는 권위를 세우기 위해 무덤을 크게 만들기 시작했고 이것이 피라미드의 시초였다.

파라오 쿠푸는 수십년간 피라미드를 만들었을 정도로 규모가 큰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고대 이집트 사회는 피라미드처럼 신분사회도 피라미드형이었다.

파라오 밑에 제사장,재상,장관,서기등의 관리

그 밑에 장인, 군인, 무희

그리고 농민, 노예순으로 계급이 있었다.

기원전 2200년경 이집트에 심한 가뭄이 들었고 사람들은 파라오를 원망하고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방관리들도 파라오의 명령을 듣지 않았고 100여년간 혼란이 계속 되었다.

멘투호테프 2세가 이 혼란을 잠재우고 이집트를 재통일해 중왕국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한번 흔들린 파라오의 권위를 되찾지는 못했다.

세누스레트 1세는 외적 격퇴, 누비아 점령으로 이집트를 다시 부강하게 하고 이때부터 100여년간 다시 한번 번영을 누렸다.

이집트의 홍수와 가뭄의 반복으로 파라오의 권위가 떨어져있을 때 힉소스 사람들이 말이 끄는 전차와 청동 무기를 앞세워서 쳐들어왔다.

이집트 파라오는 나일강 상류로 쫒겨나 힉소스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되었고 누비아도 이집트로부터 독립하여 쿠시 왕국을 세우고 힉소스와 동맹관계를 맺었다.

힉소스가 150여년간 발전하는 동안 이집트는 힉소스를 몰아내고 다시 영광을 되찾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10년 동안 전쟁준비만 해왔던 파라오 아흐모세는 전차와 무기, 커다란 배등을 만들어 전쟁을 준비했고 힉소스 정복, 팔레스타인 차지, 쿠시 왕국 (누비아) 정복을 차례로 해내며 다시 한번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번성하는 이집트를 만들었다.

기원전 1470년쯤은 최초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가 나왔다.

하트셉수트의 뒤를 이어 파라오가 된 투트모세 3세는 이집트의 강력한 파라오 중 한 명이었다.

반란지역 카데시를 잠재우고 페니키아 도시 정복을 하며 이집트를 지중해와 서아시아지역에서 가장 크고 강한 나라로 만들었다.

투트모세3세는 제사장과 손을 잡아 자신의 권위를 높였는데 그 뒤 몇 명의 파라오를 거치며 제사장의 힘이 너무 커져버렸고 파라오의 권위까지 넘보게 되었다.

아멘호테프 4세는 이크나톤이라 이름을 바꾸고 종교개혁을 통해 제사장 권력을 누르려 했으나 실패했다.

뒤를 이은 투탕카멘도 제사장의 힘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다.

하지만 차츰 파라오들은 다시 왕권을 회복해갔으며 람세스2세때에는 영광스러운 이집트의 전성기를 또한번 맞이하게 되었다.

철제무기를 가진 히타이트를 이길수는 없었기에 동맹관계를 맺고 다른 나라들과도 조약을 맺어 여러나라의 공주와 결혼해 많은 부인을 두었다.

람세스 2세는 도로를 닦고 도서관 건립, 아부심벨 신전 건축 등으로 화려한 이집트 문화를 만들었다.

이집트는 람세스 2세가 죽고나서 리비아와의 전쟁, 히타이트 제국을 무너뜨린 바다 민족과의 전쟁으로 국력을 많이 소모해버렸다.

그 뒤 누비아와 아시리아 왕들의 지배를 받아 외국인 왕의 시대를 겪었고 기원전 525년에는 페르시아가 이집트를 정복했다.

페르시아가 200년이나 이집트를 다스렸는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페르시아를 미워했던 이집트 사람들은 알렉산드로스를 파라오로 추대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이름을 따 이집트의 도시에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수도로 삼았다.

갑작스러운 알렉산드로스 왕의 죽음으로 부하인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이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는데 무려 300년동안 이집트를 다스렸다. 

지중해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여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더욱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로마가 지중해 연안의 모든 지역을 정복하고 이집트만 남겨두고 있었을 때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의 카이사르에게 도움을 요청해 미모로 카르사르를 사로잡는다.

카르사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로마의 후계자로 세우려고 했으나 카이사르가 암살당하면서 계획이 틀어진다.

로마의 새 실력자 안토니우스도 클레오파트라에게 반해 함께 이집트를 지키려고 하고 

새로 권력을 잡은 로마의 옥타비아누스와 계속 맞섰으나 로마에 패배했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끝내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국 이집트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고대 이집트 문명을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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