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_ 신라 총정리 (삼국통일 이전)
● 건국 설화 (삼국유사 中) : 서라벌 지역에 사는 대표 6명이 나정으로 가보니 말 한마리가 절을 하고 있었다.
말이 하늘로 올라간 후 그 자리를 보니 붉은 알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알에서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 아이가 바로 박혁거세이다.
● 신라는 사로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사로국의 대표가 박, 석, 김씨로부터 나왔는데,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신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 사로국은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통합하면서 서서히 세력을 확장해갔다.
● 박, 석, 김씨가 번갈아서 임금의 자리를 가지다가
사로국이 경상도 일대를 전부 복속시킬 즈음에는 김씨만이 계속 임금 자리를 이어가게 되었다.
● 하지만 아직 왕권이 절대적이지 않아서 복속시킨 다른 나라는 여전히 예전의 우두머리를 따랐는데,
이에 왕권을 과시하기 위해 화려한 금관과 거대한 무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 400년경 왜가 사로국을 계속 침입해오기에 고구려에 도움을 청하였다. 이에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대신 왜군을 물리쳐
주었고
그 댓가로 사로국에 대한 간섭이 점점 심해지게 되었다
● 고구려가 도읍을 평양으로 옮기면서 남진정책을 내세우자 백제와 사로국(이후 신라)이 동맹을 맺는 나제동맹이 결성되
었다.
● 지증왕때 사로국에서 신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 지증왕은 이사부 장군을 시켜 지금의 울릉도인 우산국도 정복하도록 하였고, 왕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 법흥왕때 율령반포, 관복 제도, 골품제 등을 만들면서 더욱 왕권을 강화시켰다.
● 이차돈의 순교로 법흥왕은 귀족들의 반대를 잠재우고 불교를 신라의 국교로 삼았다.
● 신라 진흥왕때 고구려는 귀족 세력간의 싸움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태였는데, 그 틈을 타 백제와 신라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이로써 한강 상하류 지역을 백제와 나누어 가졌다
● 2년 뒤 진흥왕은 동맹국인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 백제 성왕이 한강 수복을 위해 대가야, 왜를 끌어들여 함께 신라를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성왕은 관산성 전투에서 목숨
을 잃게 된다
● 본래 신라와 동맹이었던 대가야가 백제와 연합한 것에 분노하여 진흥왕은 이사부 장군에게 대가야를 치게 하고, 대가야
가 항복하자 가야 지역 다른 나라들도 줄줄이 신라에 항복하여 신라 건국이래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 한강을 차지함으로써 중국과 직접 교류할 수 있게 되어 외교 관계를 돈독히 하고, 새로운 문물을 활발하게 받아들였다.
● 15세 전후 남자청소년들이 모여 학문과 무예를 익히고 친목을 다지는 화랑도가 있었다.
● 진평왕은 슬하에 딸 둘만 있었으므로, 골품제에 따라서 장녀인 선덕 여왕이 그 다음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자 귀족들의 불만이 높았는데, 여왕의 권위를 세우고 불법(佛法)으로 나라를 다스림을 보여주
기 위해 진흥왕때 지어졌던 황룡사에 9층탑을 건설하게 하였다.
● 선덕여왕은 김춘추와 김유신을 가까이 두면서 위태롭게 왕 자리를 지켰다.
● 백제의 공격으로 대야성이 함락되고, 이 싸움에서 김춘추의 사위와 딸이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 선덕여왕이 죽고 사촌 여동생인 진덕 여왕이 즉위했다.
● 진덕 여왕은 모든 정치를 김춘추에게 맡겼고, 김춘추는 당나라와 동맹을 맺는 등 외교에 힘썼다.
-삼국통일 이후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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