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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_ 신라 총정리 (삼국통일 이전)

 

 

건국 설화 (삼국유사 ) : 서라벌 지역에 사는 대표 6명이 나정으로 가보니 말 한마리가 절을 하고 있었다.

 

말이 하늘로 올라간 후 그 자리를 보니 붉은 알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알에서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 아이가 바로 박혁거세이다.

 

 

 

신라는 사로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로국의 대표가 박, , 김씨로부터 나왔는데,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신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사로국은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통합하면서 서서히 세력을 확장해갔다.

 

 

 

, , 김씨가 번갈아서 임금의 자리를 가지다가

 

사로국이 경상도 일대를 전부 복속시킬 즈음에는 김씨만이 계속 임금 자리를 이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왕권이 절대적이지 않아서 복속시킨 다른 나라는 여전히 예전의 우두머리를 따랐는데,

 

이에 왕권을 과시하기 위해 화려한 금관과 거대한 무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400년경 왜가 사로국을 계속 침입해오기에 고구려에 도움을 청하였다. 이에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대신 왜군을 물리쳐

 

주었고

 

그 댓가로 사로국에 대한 간섭이 점점 심해지게 되었다

 

 

 

고구려가 도읍을 평양으로 옮기면서 남진정책을 내세우자 백제와 사로국(이후 신라)이 동맹을 맺는 나제동맹이 결성되

 

었다.

 

 

 

지증왕때 사로국에서 신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증왕은 이사부 장군을 시켜 지금의 울릉도인 우산국도 정복하도록 하였고, 왕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법흥왕때 율령반포, 관복 제도, 골품제 등을 만들면서 더욱 왕권을 강화시켰다.

 

 

 

이차돈의 순교로 법흥왕은 귀족들의 반대를 잠재우고 불교를 신라의 국교로 삼았다.

 

 

 

신라 진흥왕때 고구려는 귀족 세력간의 싸움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태였는데, 그 틈을 타 백제와 신라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다이로써 한강 상하류 지역을 백제와 나누어 가졌다

 

 

2년 뒤 진흥왕은 동맹국인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백제 성왕이 한강 수복을 위해 대가야, 왜를 끌어들여 함께 신라를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성왕은 관산성 전투에서 목숨

 

을 잃게 된다

 

 

 

본래 신라와 동맹이었던 대가야가 백제와 연합한 것에 분노하여 진흥왕은 이사부 장군에게 대가야를 치게 하고, 대가야

 

가 항복하자 가야 지역 다른 나라들도 줄줄이 신라에 항복하여 신라 건국이래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강을 차지함으로써 중국과 직접 교류할 수 있게 되어 외교 관계를 돈독히 하고, 새로운 문물을 활발하게 받아들였다.

 

 

 

 

15세 전후 남자청소년들이 모여 학문과 무예를 익히고 친목을 다지는 화랑도가 있었다.

 

 

 

진평왕은 슬하에 딸 둘만 있었으므로, 골품제에 따라서 장녀인 선덕 여왕이 그 다음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자 귀족들의 불만이 높았는데, 여왕의 권위를 세우고 불법(佛法)으로 나라를 다스림을 보여주

 

기 위해 진흥왕때 지어졌던 황룡사에 9층탑을 건설하게 하였다.

 

 

 

선덕여왕은 김춘추와 김유신을 가까이 두면서 위태롭게 왕 자리를 지켰다.

 

 

 

백제의 공격으로 대야성이 함락되고, 이 싸움에서 김춘추의 사위와 딸이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선덕여왕이 죽고 사촌 여동생인 진덕 여왕이 즉위했다.

 

 

 

진덕 여왕은 모든 정치를 김춘추에게 맡겼고, 김춘추는 당나라와 동맹을 맺는 등 외교에 힘썼다.

 

 

 

 

 

 

-삼국통일 이후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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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_백제 총정리

 

 

 

 

백제의 건국

 

 

 

 

고구려의 왕 주몽이 부여에 두고 온 아들, 유리가 주몽을 찾아와 다음 왕위를 이을 태자가 되었다.

 

 

 

비류와 온조도 주몽의 아들들이나 유리의 등장으로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남쪽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삼국사기에 나온 백제 건국설화)

 

온조가 세운 나라가 비류의 집단을 흡수하여 백제라는 나라를 지었다고 한다. (한강유역)

 

 

 

한강 주변의 수십개의 나라가 마한을 이루고 있었는데, 백제가 하나 둘씩 정복하여 한강 유역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백제 고이왕 때 관등을 만들고 복식 지정, 법 제정 등 나라의 기본 토대를 만들어갔다.

 

 

 한강을 통해 낙랑군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쇠무기와 쇠농기구를 받아들여 힘을 키워 나갈 수 있었다.

 

 

 

 

 

 

백제의 번영

 

 

근초고왕때 중국과 직접 교류하면서 문화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

 

 

 

근초고왕은 근처 나라를 차례로 복속시키고 중국 전연의 공격으로 힘이 쇠약해진 고구려와 전쟁하여 고구려 고국원왕

 

을 죽이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근초고왕은 왜, 중국 동진과 외교관계를 맺으며 국제 활동을 넓혔다. (동진 이후 송, 남제, 양으로 넘어갈때 까지 외교관

 

계 유지)

 

 

 

백제는 항해술이 뛰어났고, 해상 왕국으로 이름을 떨쳤다.

 

 

 

아직기는 왜의 태자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왕인은 왜에 유교 사상을 전해주었다. 대신 왜로부터 군사력을 빌려 주변 나

 

라를 견제하는데 이용했다.

 

 

 

 

 

백제의 위기

 

 

 

근초고왕이 죽고나서 왕실이 혼란에 휩싸이게 되고, 그 와중에 고구려는 광개토왕이 왕위에 올랐다.

 

 

 

광개토왕은 할아버지 고국원왕의 복수를 갚기 위해 백제를 공격해 한강 이북 땅을 빼앗아 갔다.

 

 

 

백제를 지원하러 온 왜군은 신라 약탈에만 열을 올렸고, 고구려가 왜군을 몰아내고 신라를 지켜주었다.( 이후 신라에 대

 

한 고구려의 간섭이 커짐)

 

 

 

고구려 광개토왕의 아들 장수왕이 즉위하고 남하정책을 실시했다.

 

 

 

남하정책에 대항하여 나제 동맹이 맺어졌다. (신라+백제가 힘을 합침)

 

 

 

백제 개로왕 때 장수왕이 한성을 공격하고 개로왕을 잡아 죽였다. (고구려에 한강 이남까지 빼앗김)

 

 

 

 

 

 

 

백제의 부활 운동

 

 

 

고구려를 피해 지금의 충남 공주인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다.

 

 

 

갑작스러운 천도로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으나 동성왕이 즉위하면서 안정을 찾아갔다.

 

 

 

동성왕은 외교에 노력을 기울이고 신라와 결혼 동맹을 맺었다.

 

 

 

무령왕이 백성을 위한 어진 정치를 하고 나라의 군사력도 점차 회복시켰다.

 

 

 

무령왕은 양나라로부터 새로운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성왕이 즉위하면서 본격적인 중흥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성왕은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면서 대가야까지 점령하고 사비로 도읍을 옮기면서 백제에서 남부여로 이름도 바꾸었다.

 

 

성왕은 중앙과 지방의 통치 조직을 정비하고 귀족의 힘을 약화시켰다.

 

 

 

고구려가 혼란한 틈을 타 신라와 백제가 고구려를 공격해서 백제는 한강 이남 지역을 도로 빼앗고, 신라는 한강 이북 지

 

역을 빼앗았다.

 

 

 

동맹국인 신라가 기습공격하여 백제가 고구려로부터 차지한 한강 이남 지역을 다시 빼앗아갔다.

 

 

 

 

신라에 복수하기 위해 신라정벌에 나섰으나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은 죽임을 당하였다.

 

 

 

성왕 이후의 왕들도 끊임없이 신라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되찾아오려고 하였으나 끝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무왕은 미륵 사상으로 백제를 통합하고자 삼국시대 최대의 절인 미륵사를 지었다.

 

 

 

 

 

 

백제의 몰락

 

 

 

 

의자왕 때 신라를 공격하여 대하성의 성주인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과 딸이 죽었다.

 

 

 

김춘추가 고구려 연개소문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당나라에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

 

 

○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였고, 자만에 빠져 있던 의자왕은 급하게 계백의 군대를 황산벌로 보냈으나 계백 군대가

 

전멸하였다.



 

 

 

 

결국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항복하면서 백제는 몰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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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포자였던 이유.

 

우리나라에 수포자 학생들이 많은 이유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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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뒤늦게 수학 공부를 하고 있다.

 

거의 15년 가까이 수학을 놓고 살다가 갑자기 수학을 해보려하니 시작도 하기 전에 움츠러들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래도 매번 중도포기하는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고자 굳게 마음먹고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교과과정 만큼은 해내보자! 하고 진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수학공부가 다행스럽게도 아직도 진행중이다.

 

수학1, 수학2, 미적분1까지 인강으로 쭈욱 개념정리를 했고

 

이제 확률과 통계 부분을 시작하면서, 도대체 이과애들은 뭘 배우는걸까 싶어 미적2를 슬그머니 엿보고 있는 중이다.

 

늦게 시작한 수학공부는..

 

당연히 어렵다.

 

 

 수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시그마가 뭔지도 몰랐고 루트4가 2인지도 모르고 시작했다.

 

그런 상태에서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공부하는게 쉬울리가 없다.

 

중학과정 내내 탱자탱자 놀다가 뒤늦게 공부에 뜻이 생겨 공부하려고 하는 학생들도 꼬박 나같은 심정이리라.

 

 

 

입시를 앞둔 학생이 아닌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속도를 조절해가며

 

수학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좀 더 고민과 생각을 많이 하며 수학을 바라보고 있다.

 

 

 

공부를 하면서 느끼게 된 것이

 

'아.. 내가 수학을 못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

 

'수포자는 단지 애들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였다.

 

 

 

공부는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공부라야 재미있고 파고들고 싶고 더 알고 싶으니까.

 

 

국사공부는 한국인으로서 역사를 모르는 건 수치니까.. 일본과 중국과 미국에서 글로벌하게 뛰어다니면서 역사적 쟁점으로

대화를 할 때 어버버하기 싫으니까 공부한다.

 

영어는 국제 언어니까 여러모로 쓰임이 많아 공부한다. 등등 나만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공부를 꾸준히 하는거다.

 

그런데 나를 포함해서 수학을 못하는 사람들의 단골멘트.

 

"수학 그거 어디 써먹어? 사칙연산만 잘 하면 되지 수학 몰라도 사는데 아무 문제 없어!"

 

아마 이런 말 많이 들어봤을거다.

 

 

예전에는 이 말에 공감하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곤 했는데, 여전히 수포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입장이지만

 

그 말에는 더이상 공감할 수가 없다.

 

 

사람은 딱 아는 만큼만 세상이 보인다.

 

본인이 보는 딱 그만큼만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그냥 기계적으로 수학을 풀었다. 적분을 하라니까 그냥 적분을 하는거고

 

로그함수를 쓰라니까 그냥 그런갑다 하고 썼다.

 

아무 의미도 없는. 무의미한 공식의 활용들.

 

나에게 수학은 입시를 위한 도구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었다.

 

 

 

세균이 시간마다 증식하는 과정을 눈에 보이도록, 내가 느낄수 있도록 그래프로 나타내고 싶다고 할 때

 

기하급수적으로 증기하는 모습을 그래프로 표현해도 (2차 함수)  정확한 수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그와 반대되는 로그를 만들어서 내가 느낄수 있는 범위로 접근하고 싶었다고 말해주었더라면

 

나는 수학이 왜 필요한지 아는채로 공부를 할 수 있었으리라.

 

 

 

 이 그냥 밑이 같으니까 이건 그냥 날려버리고 3으로 쓰는거야~ 라고 말하지 않고

 

3이라는 정의역이 지수함수를 타고 역함수인 로그를 탔기 때문에 원래 제 모습인 3이 되는거라고

 

암기 공식이 아닌 원리를 알려줬더라면 나는 수학을 재미있게 공부했을거 같다.

 

 

나를 가르쳐주신 스승님들은 아쉽게도 수학의 의미를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시는 분들이 아니었고,

 

그냥 공식을 소개해주고 공식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려주시는 분들이었다.

 

정말 수학머리가 있는 학생이라면 스스로 다 원리를 깨우치고 간파해서 하겠지만

 

나처럼 수학머리가 제로인 학생들은 일일이 선생이 원리와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면

 

절대 여기까지 스스로 확장해서 생각할 수 없다.

 

 

 

지수 함수 로그 함수가 데시벨 측정기와 같은 기기속에도 다 들어가야하는 수학이라는 걸 알았을 때,

 

진공청소기 같은 단순한 기기에도 수학적 시스템이 들어간 칩이 내장된다는걸 알았을 때

 

수학이 우리 주변에 널려있지 않은 곳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느낀 소름끼침을 뭐라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수학은 절대 없어도 사는데 지장 없는 과목이 아니다.

 

물론 먹고 사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겠지만, 수학을 잘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은 세상 보는 눈이 아예 다를거라 확신한다.

 

 

 

 

 

누구는 이 글을 보고 바보라고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걸 몰랐냐고.

 

하지만 나같은 수포자들에게는 이런 깨달음이 정말 필요하다.

 

수학이 재미없는 과목이 아니라

 

인간의 호기심과 천재성이 만들어낸 고도의 학문이라는 걸 알게 되면

수학을 마주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내가 오늘 배운 미적을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지 고민해보라.

 

이게 왜 만들어졌는지 고민해보라.

 

 

 

 

아무 생각없이, 아무런 감흥없이 공식이나 외워서 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면

 

잠시 펜을 멈추고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리고 초등학생, 중학생이 읽는 수학 교양서들을 한 권씩 심심풀이로 읽어가면서

 

수학 교과과정 각 챕터에서 배우는 것들이 어쩌다 탄생하게 되었는지

 

한번쯤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그걸 알고 수학 문제를 대할때와 모르고 대할 때의 나의 모습은 분명히 다르다.

 

 

나도 수학 개념 공부를 다 하면 틈틈히 수학교양서를 보면서 제대로 된 수학의 이해로 도전하고 싶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알수록 멋있는 과목이 수학이고,

 

더 알아갈수록 감탄스러운 과목이 수학이다.

 

 

 

많은 학생들이 수학에서 의미를 발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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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건국

 

 

 

 

주몽, 고구려를 세우다.

 

 

 

건국설화-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와 하늘의 신 해모수가 사랑에 빠졌다.

 

 

 

이를 알게 된 하백이 유화를 내쫒았는데, 부여의 금와왕이 이를 불쌍하게 여겨 유화를 거두었다.

 

 

 

알에서 태어난 고주몽이 활 실력도 뛰어나고 각종 무예에 뛰어나니 금와왕의 왕자들이 자신들의 자리에 위협을 느껴 주몽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에 주몽이 남쪽땅으로 내려와 졸본에 자리를 잡고 고구려를 세웠다.

 

 

 

유리왕, 대무신왕.. 고국천왕 등 왕위를 이어오면서 왕권이 더욱더 강해졌고, 계루부 고씨가 계속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

 

였다.

 

 

 

220년 한나라가 망한 후 중국은 위,,오 세 나라로 갈라져 전쟁이 극심해졌다.

 

 

 

이 중 힘이 센 위나라가 고구려를 자주 침범했고, 동천왕, 미천왕때에 위와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고국원왕때는 전연이라는 나라가 침입하여 고국원왕의 어머니와 왕비를 잡아가고, 미천왕의 무덤을 훼손하는 등 비통

 

한 일들을 겪었다.

 

 

 

고국원왕 자신도 백제(근초고왕때) 와의 싸움에서 백제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그 뒤를 이은 소수림왕은 전연과 백제에 복수하는 것을 미루고, 나라에 제도를 정비하는 데 먼저 힘을 기울였다.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이라는 교육 기관을 세웠으며, 율령을 반포하였다.

 

 

 

 

 

 

고구려의 성장

 

 

 

 

391년 광개토대왕이 17살의 나이로 즉위하자, 할아버지 고국원왕의 한을 풀고 잃어버린 고구려의 땅을 되찾기 위해 백제와 전연(->후연)의 정복활동을 시작하였다.

 

 

 

백제의 관미성과 한성을 차례로 함락시키고 한강 이북 지역을 차지하였다.

 

 

 

고구려가 왜의 침입을 받고 있는 신라를 구원하러 간 사이, 후연이 침입하여 땅을 빼앗아 갔고, 이로써 본격적인 후연 정복 활동을 함으로써 동북아시아 최고 강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즉위한 후, 중국과는 외교적으로 정면충돌을 피하고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고자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장수왕의 남진정책에 반발하는 백제가 신라와 군사 동맹을 맺어 맞섰으나 장수왕은 백제 도읍 한성을 함락시키고 개로

 

왕을 죽였다.

 

 

 

신라도 공격하고 남한강 가에 중원 고구려비를 세웠다.

 

 

 

 

 

 

고구려의 문화

 

 

 

 

 

 

 

 

 

 

 

 

 

 

 

 

 

 

 

 

 

신랑이 신부집에서 머물며 일을 해주다가 아이를 낳고 , 그 아이가 다 자라면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데릴사위제였다.

 

 

 

고구려의 거문고 연주자인 왕산악이 거문고를 연주하면,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출 정도였다고 한다.

 

 

 

씨름이나 수박회, 활쏘기 등으로 무예 실력을 겨루었다.

 

 

 

성쌓기를 잘해서 수많은 산성을 연결한 덕분에, 물샐틈 없는 방어막을 구축하였다.

 

 

 

 

 

흔들리는 고구려

 

 

 

 

장수왕이 죽은 후 왕권이 점차 약해지다가 귀족들의 권력 다툼이 심해져 나라가 혼란에 휩싸였다.

 

 

 

백제와 신라가 손을 잡고 쳐들어와 한강 유역을 도로 빼앗아 갔다.

 

 

 

위쪽으로는 돌궐족이 자주 침범해와서 남북으로 위기를 맞게 되었다.

 

 

 

589, 수나라가 중국 대륙을 통일 하였다.

 

 

 

수 문제 때 고구려를 쳐들어왔으나 장마로 인해 되돌아갔다.

 

 

 

수 양제 때 우중문을 선두로 다시 쳐들어왔으나 을지문덕 장군의 전략에 말려 살수에서 전멸하였다.(살수대첩)

 

 

 

수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섰다.

 

 

 

처음에는 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연개소문이 왕을 죽이고 모든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을 빌미로 당이 처들어왔

 

.

 

 

 

패전을 거듭하다 마지막 안시성을 남겨두고 지친 당나라 군대가 철수함으로써 다시 한번 고구려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중국과의 기나긴 전쟁으로 고구려 국력이 급격이 쇠퇴하였다.

 

 

 

 

 

 

 

 

 

 

 

 

 

 

 

 

 

 

 

 

 

고구려의 멸망

 

 

 

백성의 삶이 고달파졌고, 연개소문의 독재로 기득권층의 원성도 자자했다.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무너뜨리고 고구려에 처들어왔다.

 

 

 

연개소문이 죽은 후 치열한 권력다툼과, 지배자층의 배신으로 인해 나당연합군에 멸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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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겨레의 첫 나라 고조선

 

 

 

 

신석기 끝자락에 농사가 본격화 되면서 잉여 생산물이 늘었고, 이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을 중재하는, 힘있는 자가 나타

 

나 족장으로 추대받았다. 이 때가 청동기 시대이다.

 

 

 

이로써 평등사회에서 계급사회로 진입하게 되었다.

 

 

 

부족간의 싸움이 잦아지면서 무기를 강화할 필요성이 생겨나 청동무기를 쓰게 된다. 이 당시만해도 청동검은 지배자만

 

이 사용하는 귀한 것이었다.

 

 

 

거대한 고인돌 (족장의 무덤)로 그 당시 족장의 힘이 막강했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 서북부 일대에서 작은 부족들이 하나둘 통합되어 조선이라는 큰 나라가 생겨나는데, 이 나라가 바로 고조선이

 

.

 

 

 

일연의 삼국유사 속,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고조선의 첫 임금은 단군왕검이다.

 

 

 

단군은 제사장의 뜻, 왕검은 정치적인 지배자라는 뜻을 가진 의미로 고조선의 임금은 종교지도자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지배자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철기시대의 도래

 

 

 

당시 전국 시대라는 혼란기를 겪는 중국에서 사람들이 내려와 고조선에 쇠를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이로써 고

 

조선에도 철기 시대가 도래한다. (기원전 300년경)

 

 

 

철제무기로 막강한 힘을 가진 고조선은 영토도 넓히고 왕의 힘도 커졌다. 왕은 처음에는 여러 족장의 대표자일 뿐이었

 

으나 점차 큰 힘을 가지게 되어 나머지 족장들은 신하가 되었고, 고조선은 서서히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 갔다.

 

 

 

고조선 초기에는 비파형 동검이 주로 사용-> 세형동검을 사용하게 되었다.

 

 

 

신석기 시대에는 빗살무늬 토기가 사용된 반면, 고조선 때에는 무늬가 없는 민무늬 토기가 사용되었다. (초기에는 미송

 

리식 토기 사용)

 

 

 

철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고인돌은 더이상 만들지 않고 널무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위만조선

 

   

 

중국의 혼란스러운 전국시대를 진나라의 시황제가 마감했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유방이 세운 한나라가 세워질때까지 다시한번 혼란에 휩싸인 중국에서 고조선으로 내려오는 사람

 

들이 있었고, 그 중에 위만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고조선의 준왕은 위만에게 관직과 땅을 주어 압록강 유역을 다스리게 하였다.

 

 

 

압록강 유역에서 신망을 얻은 위만은 준왕의 자리를 노리고 왕검성을 침입하여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앉았다.

 

 

 

위만은 여전히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고, 이웃 나라를 정복해가며 더 큰 강국을 만들어 나갔다.

 

 

 

한나라와 동맹을 맺고 여러 나라와 물자를 교역하였다.

 

 

 

 

 

고조선 사회의 특징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귀족-평민-노비) 신분은 자손 대대로 세습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법, 범금팔조가 만들어져서 시행되었다.

 

 

 

주인이 죽으면 노비를 같이 산채로 무덤에 묻는 순장의 풍습이 있었다. (이웃나라인 부여도)

 

 

 

일반백성은 삼베옷, 귀족은 비단옷을 입었다.

 

 

 

 고조선의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이 즉위하였다. 우거왕은 북쪽 유목 민족인 흉노족과 동맹관계를 맺었는데, 한나라는 이를 못마땅

 

하게 여겼다.

 

 

 

고조선+ 흉노족 <----> 한나라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고조선이었지만, 지배층의 내부 분열과 배신으로 왕검성이 함락되었다.

 

 

  삼국시대

 

 

 

한나라가 고조선땅을 식민지화할 생각으로 한사군을 설치하였으나 고조선 주민들의 반대로 철회하게 되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고조선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가 터전을 잡고 그 곳에서 쇠 만드는 기술을 전파함으로써 고구려, , 신라 등 새로운 나라가 일어서는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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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수로 지운 포스팅을 다시 올립니다~

연대기순으로 올려야 되는데 부득이 죄송하게 되었어요 ㅜㅜ

보기 불편하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려용~

 

 

 

 

인류의 진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처럼 구부정한 모습으로 걷다가 허리를 펴고 똑바로 걷기 시작하는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하였다.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면서 바다 높낮이가 변화하고 바다였던 곳이 육지로 변해, 아프리카 대륙에만 모여있던 호모

 

에렉투스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불을 사용할 줄 알았던 호모 에렉투스는 점차 창, 찌르개 같은 도구를 만들고 말을 할 줄 아는, 발달된 지능의 호모 사피

 

엔스로 진화하였다.

 

 

 

더욱더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현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이다.

 

 

 

서해 바다도 육지였던 때 호모 에렉투스가 한반도까지 이동해왔으나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밀려난 것으로 추측

 

된다.

 

 

 

 

 

 

구석기 시대

 

 

 

한반도에 호모 에렉투스가 도착하면서 구석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돌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구하고, 수집, 사냥등으로 살아갔다. 먹을 것을 찾아 계속 이동생활을 하고, 근처 동굴에서 살

 

았다.

 

 

 

동물의 가죽이나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추위를 버텼다.

 

 

 

나무나 동물의 뼈, 돌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어 썼다.

 

큰 돌을 쪼개서 쓰는 뗀석기를 사용했다.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긁개, 으깰때 쓰는 찍개, 나무 막대기에 달아 창처럼 쓰는 슴베찌르개, 새기개 등이 모두 뗀석기

 

이다.

 

 

 

뗀석기가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 진것이 주먹도끼였다.

 

 

 

자연적인 산불에서 불씨를 가지고 옴으로써 구석기 사람들은 불을 가지게 되었다.

 

 

 

불이 있어서 음식도 익혀 먹고, 짐승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수 있었으며 추위를 견디기가 쉬워졌다.

 

    

 

 

 

 

신석기 시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와 자연환경이 변했다. 이로써 사람들의 생활도 바뀌어 신석기 시대가 도래했다.

 

 

 

한반도에는 기원전 8천년경부터 신석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살았다.

 

 

 

먹을 것과 마실 물이 풍부한 강가나 해안가에 움집을 짓고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조개더미 유물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신석기 시대에는 해빙기로 인해 바다 생물이 풍부해서 조개와 굴이 차고 넘쳤을

 

것이다.

 

 

 

돌을 갈아서 훨씬 날카롭게 만들었는데, 이를 간석기라고 한다.

 

 

 

낚시바늘, 그물추, 그물, 작살 등 다양한 사냥 도구를 개발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고 짐승도 가두어 기르기 시작했다.

 

 

반달돌칼과 토기는 신석기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한 마을에는 어머니와 형제 관계인 친척들이 대부분으로 씨족 사회였다.

 

 

 

몸을 치장하는 장신구도 만들어 썼다. (조개 목걸이, 발찌 등)

 

 

 

가락바퀴로 실을 뽑고, 뼈바늘로 가죽을 꿰어 옷을 만들어 입었다.

 

 

 

마을의 연장자가 우두머리였으나 자식에게 물려주는 자리는 아니었고 평등사회였다.

 

 

 

식량의 원천인 자연의 변화에 민감해서 애니미즘이 발생하고, 사후 세계가 있다고 믿어 장례 의식을 치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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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생각하는 쿠키북 시작했어요

 

2012. 9. 20

재능 생각하는 쿠키북 시작했어요

 

2012. 9. 20

 

재능교육의 생각하는 쿠키북.

많이들 알고 계시죠?

 

만 3세 어린아이부터 미취학 아이들이 유치원 정규교과 학습 영역을

골고루 공부할 수 있도록 독서프로그램을 짠 것인데요.

 

우리 제이는 이제 만 16개월을 넘은 아기...

아직 쿠키북을 할 나이는 한참~ 멀었죠 

크게 독서광으로 만들고 싶은것도 아니고

단지 아이가 책을 심심할 때 마다 뒤적이며 읽어달라고 조르는 통에

저의 목은 맛탱이가 가고..

전집은 사봤자 좋아하는 책 몇권만 너덜너덜해질테고

단행본을 사자니 좋은 책 고르기도 힘든 게 사실이죠.

여러가지 생각을 하던 중에 어차피 책을 즐겨하고, 엄마로서 책을 

사주고 읽어줘야 한다면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학습영역을 골고루 다루는

편식 없는 독서로 안내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가 아직 어리지만 엄마의 무리수를 띄워서 

쿠키북을 시작했답니다.

 

저와 신랑 모두 조그만 애 한테 선생님 붙여서

뭐 학습한다던가..그런건 딱 질색이라

지역 담당샘에게 부탁을 드려서 선생님은 방문안하시는 조건으로

그냥 책만 배송해주는 조건으로 쿠키북을 신청했어요.

 

어차피 쿠키북 회비 자체가 책 값이고

선생님(독서지도사)이 방문해서 책 읽어주는건 서비스차원이기에

제가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렇게 해주신다고 하시더라구요.

 

 

1단계 책 처음은 구질구질꼬질꼬질

그다음 책은 난 내가 너무 좋아. 입니당

 

전 선생님이 매주 오시는게 아니기 때문에

2주분을 한꺼번에 배송받아요.

 

여기에 책 기록 수첩과 쿠키북키라는 독후활동지

그리고 쿠키맘이라는 엄마지도서가 같이 딸려오는데요

 

아직 울 베이비는 어리니까 독후활동지도 고이 책장에 모셔두고

쿠키맘은 아이를 지도하는데 꼭 참고할 내용이 적혀있더라구요~

 

 

 

재능 스스로펜 이번에 출시된 신제품도 같이 구매했어요.

 

혹시나 애가 빨까봐 랩핑 ;;;;;;

 

근데 랩핑하고 얼마안가 다 풀고 그냥 사용중입니다 ^^

 

이번 신제품은 내부용량 4기가구요

구버전처럼 외장메모리 확장은 안되요~

대신 스티커북이 지원되서, 세이펜처럼 스스로펜 전용 스티커로

녹음이 가능하기땜에

엄마가 원하는 다른 책( 재능교육 이외의 그냥 책)에도

음성녹음을 해서 쿠키북처럼 쓸 수 있답니다.

 

당연 스티커북은 지역담당 샘에게 말씀드리면

무료로 주는 서비스랍니다~

 

 

 

스스로펜 망가질까봐 못만지게 했더니

삐져서는 책도 듣는둥 마는둥 하더라구요

 

그렇게 이틀이 지나니

혼자서 책을 유심히 보기도 하고~

이뻐죽겠더라구용^^

 

요게 재능스티커북이에요.

요걸로 원하는 책에 음성 녹음도 가능해요~

전 요 기능이 너무 좋아서 펜과 쿠키북을 한꺼번에 신청했어요

 

 

그리고..아줌마의 철판..;;;;

몇 푼 안되는 학습지 가입해놓고서는

사은품으로 요 공부상이 가지고 싶다고 완전 어처구니 없는 부탁을 드렸;;;;

 

그래도 착하디 착한 담당샘은 이 대책없는 아줌마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셨어요 ^^

 

무엇보다 아이가 스스로펜으로 읽어주는 쿠키북을 경계하지 않고

잘 봐줘서 너무 고맙구요.

이제 체계없는 단행본 구입 습관은 안녕~~하려구요 ^^

 

쿠키북 단계마다 잘 따라하면

마음이 부쩍 커져있는 우리 베이비를 어느순간 발견하게 될테지요.

 

영어, 수학같은 정말 공부를 위한 학습지는

나중에 울 제이가 커서도 시킬지 의문이지만

독서 프로그램은, 아이가 책읽기를 즐거워한다면

그 힘을 빌어봐도 좋은것 같아요

 

울 제이가 독서의 즐거움을 알고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쳤으면..하는 바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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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놀이 - 블록놀이

 

2012. 1. 21

 

 

아직 8개월인 제이.

 

집에 있는 블럭은 36개월 이상용인데
크기도 그렇고 삼킬 위험이 없어서 미리 장만했더랬지요.

 


블럭끼리 맞추지는 못해도, 손으로 블럭을 탐색하고 분리시키는 건 가능해요.

 

엄마는 블럭을 붙이고 아기한테 요리조리 만져보게 하고 뜯어보게 해요.


또 엄마는 블럭을 붙이고 ㅎ


"파란 블럭과 빨간 블럭 합체~~"
요런식으로 말도 하면서요

 

아가와 놀아주는 일은 그리 거창하게 벌여야하는 건 아니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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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정리하면서 다시 보니, 참 성의없이 쓴 포스팅이었네요 ㅎㅎㅎ

 

아마 아기를 처음 키워보는 초보 엄마라 잠자기도 모자란 시간을 쪼개서 포스팅을 하느라 그랬나보다라고 스스로

 

합리화 해 봅니다.

 

지금 제이가 벌써 7살인데, 이 옥스포드 블록을 7살인 지금도 완전 잘 가지고 놀고 있어요.

 

1,2 년 반짝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라 7년을 내리 사랑해줄 장난감일 줄 이때는 몰랐어요.

 

지금은 옥스포드 블록으로 자기가 상상하는 것, 만들고 싶은 것 자유자재로 창의적으로 만들고 놀아요.

 

얼마전 VR 체험했다고 VR 체험관을 블록으로 만들고 그러더라구요.

 

오히려 비싼 돈 주고 하나씩 사모은 레고프렌즈 블록보다 이 커다란 옥스포드 블록을 더 애정하고 있답니다.

 

 

애 키우는 집에 블록 없는 집 찾기 힘들다고 하죠.

 

이 옥스포드 블록은 진짜 최애템이라고 할만해요. 몇 주 방치되나 싶다가도 또 찾아서 가지고 놀고 하거든요.

 

꼬맹이 키우는 부모님들, 요거 하나 장만해놓으심 애들이 두고 두고 잘 갖고 놀거에요.

 

유치원에서도 놀이 영역이 따로 있는데, 빠지지 않고 있는게 블록이잖아요.

 

아마 소근육 대근육 발달시키는데 이만한 것도 없지 싶어요.

 

완전 강추~ 합니다 ^^

 

 

 

 

우리 모두 행복한 육아해 BOA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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