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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000년쯤 나일 강 유역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일 강 유역은 물이 풍부해 살기가 좋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긴 나일강을 따라 마을을 이루며 살았다.

나일강은 해마다 주기적으로 물이 불어나 넘쳤는데 물이 빠지고 나면 상류에서 떠 내려온 검은 흙이 하류에 쌓였다. 그 흙은 매우 기름져 곡식이 잘 자라서 잉여 농산물도 많이 생산되어 사람들은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물이 너무 넘칠 때를 대비해서 둑을 쌓고 물이 가물때를 대비해 저수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일 강 범람을 예측하기 위해 별을 관찰하였고 관찰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도 만들었다.

이렇게 기원전 3000-4000년쯤 나일강 유역에서 이집트 문명이 꽃피우게 되었다.

살기 좋은 나일강 유역에 인구가 늘어나자 이를 지휘할 리더가 필요해졌다. 나일강가에는 지도자가 다스리는 여러 마을이 생겼고 서로 땅과 재산을 차지하려고 싸우면서 작은 왕국들이 만들어졌다.

기원전 3200년쯤에는 하이집트와 상이집트 두 개의 커다란 나라만 남았다.

하이집트는 비옥한 강의 하류, 상이집트는 상대적으로 척박하고 고립된 강의 상류에 위치해있었다.

하이집트는 도시들끼리 싸우는 바람에 나라가 혼란스러웠는데 그 틈을 타 기원전 3100년쯤 상 이집트의 왕 메네스가 하 이집트를 점령하여 이집트를 통일했다.

이집트는 사막과 바다로 둘러싸여있어 다른 나라의 위협없이 평화로웠다. 

메네스가 이집트를 통일하고 500년이 지나 더욱 안정되고 힘이 커진 고왕국 시대가 열렸다.

파라오 덕분에 더욱 살기가 좋아지자 백성들은 파라오를 더욱 믿고 따랐다.

파라오는 권위를 세우기 위해 무덤을 크게 만들기 시작했고 이것이 피라미드의 시초였다.

파라오 쿠푸는 수십년간 피라미드를 만들었을 정도로 규모가 큰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고대 이집트 사회는 피라미드처럼 신분사회도 피라미드형이었다.

파라오 밑에 제사장,재상,장관,서기등의 관리

그 밑에 장인, 군인, 무희

그리고 농민, 노예순으로 계급이 있었다.

기원전 2200년경 이집트에 심한 가뭄이 들었고 사람들은 파라오를 원망하고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방관리들도 파라오의 명령을 듣지 않았고 100여년간 혼란이 계속 되었다.

멘투호테프 2세가 이 혼란을 잠재우고 이집트를 재통일해 중왕국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한번 흔들린 파라오의 권위를 되찾지는 못했다.

세누스레트 1세는 외적 격퇴, 누비아 점령으로 이집트를 다시 부강하게 하고 이때부터 100여년간 다시 한번 번영을 누렸다.

이집트의 홍수와 가뭄의 반복으로 파라오의 권위가 떨어져있을 때 힉소스 사람들이 말이 끄는 전차와 청동 무기를 앞세워서 쳐들어왔다.

이집트 파라오는 나일강 상류로 쫒겨나 힉소스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되었고 누비아도 이집트로부터 독립하여 쿠시 왕국을 세우고 힉소스와 동맹관계를 맺었다.

힉소스가 150여년간 발전하는 동안 이집트는 힉소스를 몰아내고 다시 영광을 되찾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10년 동안 전쟁준비만 해왔던 파라오 아흐모세는 전차와 무기, 커다란 배등을 만들어 전쟁을 준비했고 힉소스 정복, 팔레스타인 차지, 쿠시 왕국 (누비아) 정복을 차례로 해내며 다시 한번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번성하는 이집트를 만들었다.

기원전 1470년쯤은 최초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가 나왔다.

하트셉수트의 뒤를 이어 파라오가 된 투트모세 3세는 이집트의 강력한 파라오 중 한 명이었다.

반란지역 카데시를 잠재우고 페니키아 도시 정복을 하며 이집트를 지중해와 서아시아지역에서 가장 크고 강한 나라로 만들었다.

투트모세3세는 제사장과 손을 잡아 자신의 권위를 높였는데 그 뒤 몇 명의 파라오를 거치며 제사장의 힘이 너무 커져버렸고 파라오의 권위까지 넘보게 되었다.

아멘호테프 4세는 이크나톤이라 이름을 바꾸고 종교개혁을 통해 제사장 권력을 누르려 했으나 실패했다.

뒤를 이은 투탕카멘도 제사장의 힘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다.

하지만 차츰 파라오들은 다시 왕권을 회복해갔으며 람세스2세때에는 영광스러운 이집트의 전성기를 또한번 맞이하게 되었다.

철제무기를 가진 히타이트를 이길수는 없었기에 동맹관계를 맺고 다른 나라들과도 조약을 맺어 여러나라의 공주와 결혼해 많은 부인을 두었다.

람세스 2세는 도로를 닦고 도서관 건립, 아부심벨 신전 건축 등으로 화려한 이집트 문화를 만들었다.

이집트는 람세스 2세가 죽고나서 리비아와의 전쟁, 히타이트 제국을 무너뜨린 바다 민족과의 전쟁으로 국력을 많이 소모해버렸다.

그 뒤 누비아와 아시리아 왕들의 지배를 받아 외국인 왕의 시대를 겪었고 기원전 525년에는 페르시아가 이집트를 정복했다.

페르시아가 200년이나 이집트를 다스렸는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페르시아를 미워했던 이집트 사람들은 알렉산드로스를 파라오로 추대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이름을 따 이집트의 도시에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수도로 삼았다.

갑작스러운 알렉산드로스 왕의 죽음으로 부하인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이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는데 무려 300년동안 이집트를 다스렸다. 

지중해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여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더욱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로마가 지중해 연안의 모든 지역을 정복하고 이집트만 남겨두고 있었을 때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의 카이사르에게 도움을 요청해 미모로 카르사르를 사로잡는다.

카르사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로마의 후계자로 세우려고 했으나 카이사르가 암살당하면서 계획이 틀어진다.

로마의 새 실력자 안토니우스도 클레오파트라에게 반해 함께 이집트를 지키려고 하고 

새로 권력을 잡은 로마의 옥타비아누스와 계속 맞섰으나 로마에 패배했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끝내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국 이집트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고대 이집트 문명을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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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인스타 브레인'이라는 책을 소개해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밤에 양치할 때 핸드폰을 보면서 양치하는 습관이 있던 저는 '인스타 브레인'을 읽고 나서 정말 핸드폰을 보고 싶은 엄청난 충동과 싸우며 핸드폰 없이 양치를 하도록 노력하고 있는 중이에요 ^^;;

인스타 브레인이라는 책을 집어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책의 앞머리를 조금 요약해봤어요.


스웨덴에서는 성인 10명중 8명이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인류는 자신의 역사중 99.9%에 해당하는 시간동안 수렵채집인이었다. 당연하게도 우리 뇌는 그 생활방식에 맞게 진화했다.실제로 우리 뇌는 최근 1만년동안 변하지 않았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수면, 신체 활동 그리고 사람들과의 유대감은 명백하게 우리의 정신건강을 지켜주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가 갈수록 줄어드니, 우리의 기분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매분 매초 광고를 보여주고 제품을 구매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기업들은 이미 우리의 뇌를 해킹했다.

기업의 목표는 최대한 우리의 시간을 뺏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최대한 오래 SNS에 붙잡아두려고 노력한다.

많은 기업들이 뇌의 보상 시스템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행동과학자와 신경과학자를 고용해 연구하고 있다.

SNS는 헤로인과 맞먹을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멀티태스킹을 하는 사람의 최종결과는 언제나 늘 더 나빴다.

피실험자들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의가 분산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 핸드폰 뿐 아니라 컴퓨터, 태블릿 .. 심지어 충격적이었던 것 이리더기조차도 ..

그 어떤 디스플레이도 결국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아날로그의 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 보는 컴퓨터, 핸드폰을 멈추고 잠시 밖을 거닐거나 달리고픈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하루종일 핸드폰을 쥐고 있는 분

컴퓨터나 태블릿 조작 시간이 긴 분

종이책보다 e리더기로 책 읽기 좋아하시는 분

그리고 운동 안하시는 분 ^^

들께 꼭 꼭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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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드 제국

수메르 도시 국가들이 서로 전쟁을 하느라 쇠약해지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셈족의 사르곤이 쳐들어왔다.

사르곤 왕은 수메르의 도시국가들을 하나씩 정복해나가 수메르 지역을 통일하고 메소포타미아에 최초의 통일 제국인 아카드 제국을 세우게 된다.

강한 군대를 만들고 수도 아카드를 금과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아카드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하였다. 아카드제국은 다른 나라와 활발한 무역활동도 하였다. 

사르곤 대왕의 손자 나람신 왕때 아카드 제국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나람신 왕이 죽은 후 이민족의 침략으로 멸망하였다.

 

바빌로니아

아카드제국이 망하자 메소포타미아에는 다시 작은 왕국들이 서로 힘을 다투어 영역싸움을 했다.

작은 왕국 중 하나였던 바빌론에 함무라비 왕이 왕위에 올랐는데 신중한 전략과 외교술을 이용해 메소포타미아지역을 재통일했다.

함무라비왕때부터 바빌론 왕국에서 바빌로니아 제국이라 불리게 되었다.

함무라비왕은 사회를 안정시키고 문화를 부흥시켜 바빌로니아 제국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기원전 1595년 히타이트족의 공격으로 멸망한다.

 

히타이트 제국

중앙아시아에 살던 히타이트족이 주변 나라들을 정복하고 강력한 전차 군대를 가지고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여러나를 정복했다.

전차와 우수한 철제무기덕분에 200년 가까이 오리엔트 지역의 최강자가 되었다.

기원전 1200년 경 히타이트제국은 이름 모를 민족의 침략으로 갑작스럽게 멸망했다.

 

페니키아

셈족 중 일부가 지중해 동쪽에 자리잡고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 국가들이 생겨났는데 이 국가들의 연맹이 페니키아였다.

페니키아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길목에 있어 무역에 유리하였다.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힘이 약해지자 그 틈을 타 기원전 1100년 쯤 독립했다. 그 후 지중해를 누비며 해양 무역을 독차지 하는 등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페니키아는 배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고 알파벳을 발명해 문자 문명을 널리 퍼뜨렸다.

기원전 9세기 아시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아 쇠퇴하기 시작했다.

 

헤브라이 왕국

메소포타미아에 사는 사람들은 다신교를 주로 믿었는데 헤브라이 사람들은 야훼라는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교를 믿었다.

힉소스족에게 협력하여 이집트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는데 힉소스 왕조가 물러나자 이집트의 핍박을 받았다.

이집트 왕이 헤브라이족의 남자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했는데, 바구니에 담겨져 살아남은 남자아이가 있었고 그 아기가 헤브라이 민족의 영웅 모세였다.

모세가 헤브라이사람들을 이끌고 야훼가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갔으나 그곳은 이미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부족이 살고 있었고 가나안 땅을 두고 다툼이 시작되었다.

헤브라이왕국의 다윗왕은 가나안의 여러부족을 통일,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헤브라이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이 즉위하고 국방, 경제, 문화를 발전시켜나갔다.

하지만 대규모 건축사업과 군대 증강으로 과도한 세금을 걷고 백성들의 노역을 시키는 바람에 불만이 커졌다.

솔로몬 왕이 죽자 내란이 일어났고 거듭되는 혼란으로 북부는 아시리아제국에 의해, 남부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정복당했다.

 

아시리아

강력한 철제 무기와 군사력으로 기원전 750년전 부터 시리아, 페니키아,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이집트마저 정복했다.

아시리아 전사들은 정복한 도시에 불을 질러 철저하게 파괴시켰다.

반란자는 잔인하게 죽였다. 

 

신바빌로니아 제국

아시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칼데아 사람들이 세력을 키워 아시리아를 무너뜨리고 바빌로니아 제국의 영광을 찾기 위해 신바빌로니아 제국으로 이름짓고 나라를 세웠다.

네부카드네자르2세는 무역 도시를 정복하고 국제 무역을 손에 넣었으며 화려하게 신전과 제단, 건축물을 세웠다.

향수병에 걸린 아내를 위해 인공 산을 만들고 꽃과 나무를 심어 공중 정원을 지은 것이 유명하다.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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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시작

기원전 8000년경 대부분 사람들은 수렵 채집활동을 하고 여기저기로 이동하면서 생활을 해나갔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불리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기름진 땅에 도착한 사람들은 더이상 이동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기후가 따뜻하고 땅이 기름지고 물이 풍부해서 정착생활을 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바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농사를 시작한 곳이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농경지 근처로 모여 살게 되고 촌락을 이루게 되었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도 촌락이 생겼고 사람들은 강 상류 산기슭에 모여살았다.

강물을 끌어와 물길을 만들고 저수지를 만드는 등 자연환경을 이용할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강 상류 뿐 아니라 강 하류로도 생활터전을 넓혀나갔다.

메소포타미아 평야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길목에 있어 유목민들이 자주 드나들었는데 수메르인들도 그런 유목민중 하나였고 기원전 35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 정착해 살았다.

잉여농산물이 생기자 모두 농부가 될 필요가 없었기에 상인, 수공업자등 다른 직업들도 생겨났다.

촌락들은 점점 커져 도시를 이루고 도시를 중심으로하는 도시국가가 생겨났다.

수메르인들이 바로 인류최초의 문명을 일으킨 것이다.


수메르 도시국가

수메르인의 도시국가에는 다른 부족의 침략이 잦았다.

홍수,가뭄도 자주 겪어 신에게 기도하기 위해 '지구라트' 라는 신전을 지었다.

수메르 도시 국가는 지구라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사제의 권력이 점차 커졌고, 사제가 여러가지를 기록하기 위해 '문자'의 필요성이 생겼다.

문자는 점토판에 갈대끝으로 찍어 새겼는데, 이를 쐐기문자라고 한다. 

이 쐐기문자가 인류 최초의 문자이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것은 '서기'만 할 수 있었고, 교사, 의사같은 다양한 직업들이 이때 생겨났다. 

매매 거래는 점토판으로 계약서를 만들고 도장을 사용했다.


왕권 강화

수메르의 여러 도시국가들이 전쟁을 벌이고 다른 부족이 침략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자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의 역할이 중요해졌고 사제 중심에서 장군 중심으로 바뀌어갔다.

장군이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자신의 지위를 대물림하는 일이 생기면서 왕조가 생겨났다.

왕은 사람들로부터 신처럼 떠받들려졌고 죽으면 왕을 모실 사람들을 같이 생매장하기도 했다.

수메르 도시국가 중 리가시의 왕 우르카기나는 다른 왕들과 달리 고통 받는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여러가지 개혁을 한 왕이었다.

우르카기나 왕의 칙령을 적은 문서는 현존 법률문서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메르의 여러 도시 국가들은 서로 경쟁하며 발전해나갔다. 

메소포타미아 근처를 떠돌던 셈족이 쳐들어와 수메르 도시 국가들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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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자기계발서적에 손을 댔습니다. 

자기계발서적은 어떨 때 읽으면 지친 몸과 마음에 열정주사를 꽝꽝 놔주면서 의욕이 샘솟게 하기도 하고

어떨때는 다른 책에서 봤던 듯한 비슷비슷한 내용들때문에 피로감을 느낄때도 있어요.

역행자 책은 둘 다더라구요 ^^ 화이팅 정신을 확 북돋워주다가도 어디서 들어본 말들 때문에 피로한.. 

역행자 저자는 독자들 마음을 호로록 사로잡게 언변이 뛰어나세요. 

마케팅에 일가견이 있으시고 사업을 여러개 하시는 분이라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극적인 요소를 가진 개인적인 스토리와 성공 비법을 능수능란에게 펼쳐보이십니다.

20대까지 꼴찌 인생에 못생긴 얼굴, 노답 인생이었다가 책과 글쓰기를 통해 성공한 사업가이자 엄청난 부자가 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런 미운오리새끼 같은 이야기들은 다들 혹~하는 이야기니까요 :)

굉장히 에너지를 많이 주고 도움되는 워딩도 많아서 형광펜으로 엄청나게 그었지만

알맹이는 

독서

글쓰기

사업과 투자

타이탄의 도구들을 모으기

이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요. 알맹이를 정리하고 보니, 왠만한 자기계발서적에서 늘상 하는 이야기라 좀 맥이 풀리긴 하더라구요.

"거의 다 실천하고 있는데 나는 왜?!!!!" 요런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심지어 저는 저자가 강조하고 강조하는 블로그(두개나 운영), 독서, 유튜브 모두 꾸준히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저자의 비법도 중요하고 실천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는.. 더 중요한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선한 사고.. 창의적인 생각은 저같은 FM기질러에게는 잘 나오지 않는거거든요. 저자는 사고를 말랑말랑하게 하시는 분 같아요. 저와는 달리.. 또르르르..

수백권의 책을 읽고 책 요약본을 컴퓨터에 꼼꼼히 메모 저장해두고 틈틈히 읽어보며 마인드셋을 하는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다른 사람보다 '창의성'이 좀 떨어지는 구나..라고 느낄때가 종종 있거든요.

신선한 사고, 높은 창의성이 저자가 사업을 할 때  아주 크게 작용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니..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두루두루 읽으셨다는 점이 저와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제가 억만장자가 아닌가봐요^^;;) 전 늘 읽던 분야만 파는 스타일이라, 그런점도 배워봐야겠다 생각했어요.

자기계발서를 여러권 읽지 않은 뉴비 reader라면 역행자 읽으면서 엄청 자극도 많이 받고 인생책으로 픽! 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저처럼 백여권 이상 읽어본 reader라면 역행자에서 새로운 뭔가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지금까지 읽어본 책들 '실천'하는 것에 집중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참! 책 끝에 저자가 추천해주는 도서 목록이 참 좋았습니다.

따로 메모해뒀다가 1권씩 1권씩 독파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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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Se93bWebuc

중2수학 미지수가 2개인 일차방정식 개념강의 업로드했습니다.

많이 많이 시청해주세요 ^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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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은 박지원의 한문소설 허생전의 주인공이다.

평생 글만 읽고 생계꾸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던 허생은, 

아내의 질책을 듣고 백성들의 삶을 알아보고 실천하는 학문을 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온다.

서울갑부 변씨로부터 만냥을 빌려 시장의 모든 과일(제사에 쓰이는 모든 것들)을 2배 가격을 불러 사들이고

국민들이 과일이 없어 제사를 지낼 수 없게 되자 상인들에게 10배의 가격을 매겨 판다.

그야말로 매점매석의 대가로 거듭난 것이다.

-

농민이었으나 살기가 어려워져 도적이 된 무리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이들을 무인도로 데려가 잘먹고 잘살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대성공을 거둔다.

쌀농사로 엄청난 수확을 거두어서 흉년과 기근으로 힘든 일본에 가서 쌀을 팔아 엄청난 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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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갑부 변씨에게 빌린돈 만냥 뿐 아니라 이자까지 쳐서 10만냥을 주고

다시 허생은 집으로 돌아온다.

변씨는 허생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어영청 대장 이완을 소개시켜 주었다.

이완이 나라가 잘 살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되느냐고 물었는데 허생이 말한 3가지 방도를 이완은 다 실행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고

이완의 이야기에 허생은 노발대발하여 이완이 도망치고 만다.

---

조선 후기 실학자인 박지원의 소설이기에 박지원의 생각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허생이 실학을 옹호하고

배청의식이 강했던 시기에 북학론(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던 점이 그러하다.

조선시대을 지배했던 성리학의 모순을 비판하고 실제 현실을 개혁할 필요성을 느껴서 제기된 것이 바로 실학이다.

실학은 특히 신분과 상관없이 능력이 있는 자는 고위직에 올라 나랏일을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주장했고

모든 백성들이 땅을 골고루 소유하고 자기 땅에서 자기 일을 할 수 있어야 된다고 보았다.

 

실학이론 중 이용후생은 백성의 일상적 생활에 이롭게 쓰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실학이다라고 주장하였고

학문은 세상을 다스리는데 실익을 증진시켜야 하며,  현실문제를 농업혁신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 경세치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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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OL stands for 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 and TESOL strategies refer to a variety of teaching techniques and approaches that are used to help learners acquire English language skills. Here are some of the principal TESOL strategies:

  1. Communicative Language Teaching (CLT): This approach focuses on teaching language in context, with an emphasis on communication and interaction between learners. CLT emphasizes the use of authentic materials and real-life situations to promote language learning.
  2. Task-Based Language Teaching (TBLT): This approach involves teaching language through tasks that simulate real-life situations. Learners work together to complete tasks, which require the use of language to achieve the task objective.
  3. Content-Based Instruction (CBI): This approach involves teaching language through subject matter content, such as science or social studies. CBI integrates language instruction with the teaching of subject matter, making language learning more meaningful and relevant.

  4. Grammar-Translation Method: This is a traditional approach to language teaching that focuses on teaching     grammar and vocabulary through translation exercises. This approach is less communicative and interactive than the other strategies listed above.

5. Audio-Lingual Method: This is another traditional approach to language teaching that emphasizes the memorization and repetition of language patterns through drills and exercises. This approach is less communicative and interactive than the other strategies listed above.

It's worth noting that there is no one-size-fits-all approach to TESOL, and different strategies may be more effective for different learners and contexts. Effective TESOL strategies should be flexible, adaptable, and tailored to the needs of the learners.

 

It's difficult to predict the future of cram schools in Korea, as it will depend on a variety of factors such as the development and adoption of AI technology, cultural attitudes towards education, and changes in the job market. However, it's worth noting that AI technology is still in its early stages, and it is unlikely to completely replace human teachers in the near future.

While AI technology can be effective in providing personalized learning experiences and automated feedback, it may not be able to replace the nuanced and dynamic interactions between human teachers and students. For example, human teachers can provide emotional support, respond to questions and feedback, and create a sense of community in the classroom that may be difficult to replicate with AI technology.

Furthermore, in many cultures, there is a strong preference for in-person, face-to-face instruction and a belief that human interaction is essential for effective learning. This preference may continue to drive demand for human teachers in the future, even as AI technology advances.

In summary, while AI technology may have some impact on the demand for human teachers in cram schools, it is unlikely to completely replace them. It is more likely that AI technology will be used to supplement and enhance human teaching, rather than replace it entir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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